제목 | 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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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21 | 조회수34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체칠리아 성녀는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랐다. 성녀의 생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260년 무렵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며, 박해 시대 내내 성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다고 한다. ‘체칠리아’라는 말은 ‘천상의 백합’이라는 뜻으로, 배교의 강요를 물리치고 동정으로 순교한 성녀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흔히 비올라나 풍금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체칠리아 성녀는 음악인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제1독서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19 그러자 그 천사가 땅 위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 주해 14절 심판자로서의 메시아를 나타낸다. 15절 “추수”와 “포도 수확”의 표상은 여호사밧 골짜기에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다고 선언하는 요엘 4.13에서 유래한다. 마르 4,29에도 같은 표산이 나온다. “열매가 익으면 사람이 곧 낫을 댑니다. 추수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추수”는 의인들을 거두는 것보다 불신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고 본다. 복음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주해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다 루카복음에는 종말론 두 편이 있는데 17,20-37은 어록의 종말론을 옮긴 것이고, 21,5-36은 마르 13장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루카 21,5-36에는 마르 13장에 없는 요소 또는 그와 다른 요소가 상당히 많다. 루카는 마르 13장을 곧이곧데로 베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말관에 따라 수정,가감했다 하겠다. 66~70년 유다인들은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벅서나려고 1차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70년 8월 29일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붙태워 버림으로써 독립전쟁은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핬다. 마르코는 70년 참변 이후에 복음서를 집필한 것 같다. 그는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를 예감.예고하면서 그 끔찍한 참변이 일어난 다음에는 곧 역사의 종말이 닥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마르코는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를 종말의 전조로 보았던 것이다. 마르코와는 달리 루카는 70년 참변 이후 10여 년이 지나서 80년경에 복음서를 집필했다. 루카는 그 참변을 한낱 역사적 비극으로 보았지 종말의 전조로 보지는 않았다. 또한 루카는 구약성서와 예수님이 그 참변을 예언한 바 있는데 실제 그대로 되었다고 보았다. 5절 성전 파괴 예언은 마르 13,1-2를 옮겨쓰면서 약간 고친 것이다.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성전을 떠나 이 예언을 하셨는데, 루카는 이를 고쳐 계속 성전에서 예언하셨다 한다. 또한 마르코에 의하면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성전 건물에 대해 탄복했는데 루카는 막연히 어떤 사람들이 탄복했다 한다. 7절 7절의 질문은 마르 13,3-4를 옮긴 것인데 마르코에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은밀히 예수께 여쭈어 본다. 7절의 “이런 일들”은 명시적으로는 성전 파괴를 뜻하나 함축적으로는 “종말”도 뜻하겠다. 재난의 시작 21,8-19는 루카가 마르 13,5-13을 베끼면서 더러 수정,가감한 것이다. 8절 “또 ‘때가 닥쳤다’할 터인데 여러분은 그들을 따라가지 마시오”는 루카의 가필. 9절 루카는 “전쟁과 전쟁 풍문”을 고쳐 “전쟁과 반란(풍문)”이라 한다. 아마도 여기 반란은 68~70년의 로마 황제 계승을 둘러싼 내란과 66~70년의 유다 독립 전쟁을 가리킬 것이다. 11절 11절은 “곳곳에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이 들 것입니다”(마르 13.8ㄴ)를 확장한 것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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