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4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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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23 | 조회수24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2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22 수금 타는 이들과 노래 부르는 이들, 19,1 그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주해 바빌론의 멸망 18장은 대바빌론의 멸망을 장엄하게 묘사한다.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이며 파멸의 원인으로 대바빌론을 보는 저자는 예언의 서곡으로 이 장을 연다. 이어 열심한 신자들에게 도시에서 떠나기를 권하며, 하느님의 심판을 전달할 천사들에게는 신자들의 재난을 오히려 갑절로 갚아주도록 명한다. 그 다음 새 민가가 나온다: 왕들과 장사꾼들과 벳사람들의 탄식이다. 그리고 신적 징벌의 완성을 기리는 노래와 천사의 말로 이 장이 끝난다. 18장은 구약성서적 냄새가 유난히 물씬 풍긴다. 몰론 저자는 구약에서 소재를 취하되 모두 자신의 신학적 구조에 맞추어 재해석한다. 에제26-27; 36장과 이사 23장에서 취한 소재가 많다. 특히 에제 26-27장의 “띠로의 멸망” 기사와 흡사한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절 천사의 탁월함이 “영광스러운 광채”라는 용어로 묘사된다. 온 땅이 흡사한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절 대바빌론의 몰락은 이미 14.8에서도 언급되었다. 파괴된 대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짐승들의 소굴이)되었다“는 말은 바빌론이 ”여우의 소굴“이 되리라고 예언한 에제 51.37에서 유래한 것 같다. 21절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행위는 바빌론의 운명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라는 것을 천사의 설명에 의해 알 수 있다. 이 상징행위는 예레미야가 바빌론에 내릴 모든 재앙을 기록해서 스라야에게 건네면서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책에 돌을 달아 유프라테스 강물 속에 던지시오. 던지며 이렇게 말하시오. ‘이처럼 바빌론은 물에 가라앉으리라. 내가 내리는 재앙을 당한 후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예레미야가 말한 바빌론이 묵시록에서 로마로 탈바꿈된 것에 불과하다. 22절 22-24절의 황량한 바빌론 모습은 황폐한 유다를 보며 읊은 예레미야의 애가를 상기시킨다. “흥겨운 노래 소리도. 즐거운 신랑신부 소리도, 맷돌질 소리도 더는 나지 않으리라. 다시는 등불이 꺼지지 않으리라” 19장 1절 히브리어 할렐루야는 할랄(찬양하다)과 야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 글자대로의 뜻은 “야훼(하느님)를 찬양하라”다. 이른바 힐렐 시편들에서 발견되는 이 말은 유다 전례의 한 형식으로 발전했다. 그 후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사용했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유일하게 묵시록 19장에만 나온다. 4절 이 행복선언은 루카 14.15를 상기시킨다. “하느님 나라에서 먹게 될 사람은 복됩니다!”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주해 큰 재난 21,20-24는 루카 마르 13,14-20을 대폭 수정,가감한 것이다. 그렇게 한 까닭인즉, 마르코는 장차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을 예고했으나, 루카는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을 겪고 그 사건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코는 예루살렘 멸망을 종말 직전의 전조로 여긴 데 반하여, 루카는 그 멸망을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오직 해와 달과 별들이 뒤흔들리는 우주적 파국만을 종말 직전의 전조로 여겼다. 20절 마르 13.14에서는 종말의 전조로 “황폐의 흉물”이 성전에 등장하리라고 했다. 그러나 루카 21,20은 로마군이 70년 해방절부터 예루살렘을 포위하다가 마침내 같은 해 8월 29일에 예루살렘 시내를 완전히 점령한 사실을 상기하여 개작한 것이다. 21절 마르 13,15-16에는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도 말고 제 집 안에서 물건을 꺼내려 들어가지도 마시오, 또한 들에 있는 사람은 제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마시오”라는 충고를 덧붙이고 있다. 루카는 이 충고를 17.31에 수록한 대신 21,21ㄴ22에는 다른 말씀을 창작. 추가했다. 그 내용인즉, 전란에 휩싸인 예루살렘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불충한 예루살렘이 엄한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루카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본디 구원이 이룩된 장소였으나 70년에 복수의 심판을 받은 다음부터는 구원사적 위치를 상실했다. 23절 23ㄱ절은 마르 13.17을 그대로 옮겨쓴 것이나 불행한 이유가 서로 다르다. 마르코에 의하면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는 여자들은 쉽게 달아날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하다. 그러나 루카에 의하면 예루살렘의 전란을 겪기 때문에 불행하다. 마르코에는 불행선언 다음에 “이런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시오”라는 충고가 있는데, 루카는 예루살렘 멸망을 참작하여 그것을 삭제했다. 사실 예루살렘은 70년 4월부터 8월까지 로마군에 포위되었다가 8월 29일에 함락되었던 것이다, 23ㄴ절 “땅에는 큰 곤궁이, 이 백성에게는 진노가 닥칠 것입니다”는 마르 13.19를 대폭 수정한 것이다. 24절 24절은 루카가 형성, 첨가한 것으로, 요세푸스가 전하듯이 예루살렘의 비극을 서술한다. 로마군이 이스라엘인들을 살육하고 포로로 잡아가며 엄히 다스린다는 것이다. 루카는 “이방민족들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즉 종말이 다칠 때까지 로마군의 지배가 계속될 것으로 보았다. 이 시대는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대이기도 한다(사도 1.8). 종말 21,25-28은 마르 13,24-27을 대폭 가감, 수정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장차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다루는데. 해와 달과 별들이 뒤흔들리는 종말 전조가 나타나고 이어서 인자가 내림하는 종말이 닥치리라고 한다. 25절 25-26절은 마르 13,24-25를 많이 고친 것이다. 마르코는 예루살렘 멸망에 곧이어서 종말이 닥친다는 뜻으로 “그 무렵에, 그 재난 후에”라고 하는데, 루카는 예루살렘 멸망과 종말을 연속적 사건들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삭제했다. 또한 루카는 종말 전조인 우주적 이변을 예루살렘 시민뿐 아니라 온 인류가 목격할 것이라 한다. 28절 루카는 마르 13.27을 삭제하고 그 대신 28절을 지어넣었다. 속량은 본디 속전을 지불하고 노예나 포로를 해방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명사 “속량”. 동사 “속량하다”는 네복음서 가운데 오직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낱말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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