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7 대림 제1주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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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1-26 | 조회수47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 교회는 마지막 때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세상이 끝나면 그것으로 우리 모두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시는 주님에게서 구원을 얻습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늘 깨어 있도록 합시다. 제1독서 <주님께서 영원한 평화의 하느님 나라로 모든 민족들을 모아들이신다.>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 주님께서 영원한 평화의 하느님 나라로 모든 민족들을 모아들이신다. 제2독서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주해 세말을 준비하는 생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세말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은 결정적 구원이 성취될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고서 세말을 준비해야 한다. 그들은 파멸과 죽음을 초래하는 죄스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결정적 구원을 가져다주는 선행에 전념해야 한다. 밤과 낮, 어둠과 빛의 대조는 신자가 환락과 폭음으로 음행과 방탕에 빠져 싸움과 질투는 일삼지 말고 세례 때 맺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일치는 매일 죄스러운 이 시대와 단절하고 죄스러운 육적 생활을 버리는 데 있다. 11절 1데살 5,6;1고린 15.34 참조. 12절 죄와 죽음으로 점철된 파멸의 옛 시대가 지나고 세말 구원시기가 다가왔다. 낮과 밤의 대조는 선과 악, 구원과 파멸의 상반성을 뜻한다.(2고린 6,14-15; 에제 6.12 참조). “어둠의 행실”은 13ㄴ절에 나온다. 빛의 무기는 13ㄱ.14절에 암시되어 있다. 1데살 5.8에서는 빛의 무기가 신앙, 사랑, 희망이라고 적혀 있다. 14절 “그리스도를 입는다”라는 말은 세례를 통해 그분과 일치함을 뜻한다. 이 일치는 수세자가 다른 모든 형제와 일치를 이루는 토대가 되고 죄스러운 육의 욕정을 충족시켜 남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과 반대된다. 복음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주해 37절 37-39절(루카 17,26-27)은 어록에서 옮겨쓴 것이다. 노아시대와 현재는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는 논지를 편다: 미구에 “생각하지 않은 시간에 인자는 온다” 인자 내림에 대비해서 깨어 준비해야 한다. 즉, 회개의 결단을 내려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빨리, 그리고 갑자기 오실 인자에게 단죄의 심판을 받는다. 40절 이중상징어는 어록을 옮겨실은 것이다. 마태오와 루카의 형태가 상당히 다른데 어느 것이 어록을 더 잘 보존했는지 가리기 쉽지않다. 루카의 형태: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한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 어느 형태를 따르든지 뜻만은 같다. 즉, 두 사람 가운데서 회개한 사람은 구원받고, 회개하지않은 사람은 멸망당한다는 것이다. 구원과 멸망의 판단은 하느님 또는 인자가 내리는 것 같지만, 실은 각자 구원과 멸망을 자초한다 하겠다. 왜냐하면 하느님 또는 인자는 각자의 “행실대로”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42절 42절은 마태오가 마르 13.35를 옮겨쓰면서 대폭 줄인 것이다. 마르 13,34-36은 문지기 비유다. 종말의 시기를 모르는만큼 “깨어있으시오”, “준비하고 있으시오”(24.44)라고 한다. 43절 도둑을 지키는 집주인 비유 역시 어록을 옮겨쓴 것이다. 이 비유는 이른바 위기 비유류에 속한다. 곧, 종말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니 늘 대비하고 있으라는 뜻을 지닌 비유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순간이 종말이라고 여기고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종말이 되면 인자가 내림하여 하느님 나라를 이룩한다고 보았다. 즉, 하느님의 나라와 인자 내림을 거의 동시 사건으로 본 까닭에 “하느님의 나라가 옵니다”를 “인자는 옵니다”로 고쳐쓸 수 있었다(44절). 또한 1세기 교회에서는 이 비유의 영향을 받아, 예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온다거나 또는 예수 주님은 도둑마냥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는 표현을 즐겨 썼다(묵시 3.3;16.15).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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