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6 대림 제3주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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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2-15 | 조회수28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3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은 이렇게 말하지 마라. 7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복음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주해 33절 세례자가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자들 앞에 행한 증언(1,19-27)을 연상시킨다. 저자가 처음부터 세례자의 증언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느님이 세례자의 증언에 함께하시고 세례자가 또한 하느님의 충실한 사람(파견된 자)으로서 그리스도에 관해 증언했다면(1,31-34), 그의 증언도 “진리”를 위한 증언이다. 예수는 자기 자신이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빌라도 앞에서 밝힌 바 있다(18.37). “진리”는 예수를 통해 밝혀지는 하느님의 종말론적 계시다. 예수 자신이 또한 “진리”(14.6)다. 따라서 세례자는 그런 진리 계시에 봉사함으로써 “진리에 대하여 증언한” 자다. 34절 예수 자신은 하느님의 증언 외에 그 어떤 증언도 필요없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세례자 증언의 가치가 상대화한 셈이다(36절 참조). 어떤 사람의 증언도 필요없는 예수 자신이 세례자의 증언을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유다인들”이 구원받도록 하는 데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즉, 세례자의 증언이 사람들을 위해서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이기 때문이다(.17). 35절 “빛”은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표상어이기 때문에, 세례자를 “등불”로 표상한다(1,7-8 참조). 세례자의 증언(33절)을 한번도 제대로 받아들이거나 참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마르 11.30-33 참조). 세례자가 “등불이었다”란 말은 “잠시 동안” 세례자에게 긍정적으로 취한 사람들의 태도와 관련된 표현이다. 즉, 세례자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증언활동과 관련된 표현이 아니다. 세례자는 항상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36절 세례자의 증언보다 “더 중대한 증언”은 예수가 행하는 일들. 곧 계시사건들이다. 이 “일들”을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이룩한다(17.19절 참조). 이 “일들”이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었음을 증언한다. 이 “일들”은 예수가 이미 이룩한 것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가 지상에서 이룩해야 할 것들도 총칭한다(9.4 참조). 공관복음의 “기적”이 요한복음에서는 “일”과 “표징”으로 표현된다. “표징”은 행동으로 드러난 계시로서 “일”의 또 다른 면을 묘사할 따름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아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타고르는 우리나라를 일컬어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는 힌두교 신자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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