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5 주일(백)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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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2-12-24 | 조회수28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4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 피 속에 뒹군 군복도 6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놓인 그 왕권은 강대하고 -.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제2독서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 주해 11절 구원받은 사람이 지켜야 할 의무의 동기 5ㄴ,10ㄴ절에서 이미 신분에 따라 합당하게 생활해야 하는 근본 동기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지만 이제는 그 동기를 더욱 자세히 말한다. 필자는 여기서도 전해받은 정식(定式) 표현을 사용했다. 11절 예수의 생애와 수난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12절 예수를 통해 나타난 은총은 교육자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를 알게 된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고 무시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 앞에서의 올바른 생활을 배운다. 13절 “위대하신 하느님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남”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복음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7 첫아들을 낳았다. 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주해 1절 황제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토”는 존자라는 뜻의 존칭. 기원전 29년부터 후 14년까지 로마제국을 통치했다. 루카는 예수 탄생이야말로 세계사적 의의를 지님을 강조코자 그 탄생을 제국의 호적등록과 연결시킨다. 역사상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세금을 거두어들일 목적으로 로마제국 일부에 호적등록령을 내린 적은 있지만 제국 전체에 그렇게 한 일은 없다. 2절 퀴리노는 시리아 총독으로서 이스라엘까지 다스렸는데, 그가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호적등록을 실시한 해는 617년, 즉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4년에 예리고에서 죽은 지 10년 만이다. 예수께서 헤로데 대왕 생존시에 탄생하셨다면, 역사상 예수 탄생은 퀴리노의 호적등록령과는 무관하다. 3절 각자 자기 거주지에서 호적등록을 마쳤다. “제 고을”. 즉 조상들의 거주지로 가서 등록한 사례가 이집트에는 더러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난 예외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1~3절은 거의 허구인 셈인데, 루카는 마리아가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겨가서 예수를 낳은 연유를 설명코자 허구를 꾸몇다. 4절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 다윗의 후예 메시아는 여기서 탄생한다는 설이 유다인들 사이에 퍼졌다. 요셉이 다윗 가문에 속했기 때문에 그의 양아들 역시 다윗의 후예로 통할 수 있었다. 7절 이스라엘에서는 외아들이든 장남이든 아들을 처음으로 얻으면 하느님의 처지로 간주했다. 하느님 차지인 첫아들들을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뜻으로 부모는 첫아들이 나면 한 달 안에 성전 비용으로 5세겔(20데나리온)을 바쳤다. 이 때 부모나 아기가 예루살렘 성전에 갈 필요 없이 어디서든 제관에게 값을 치르기만 하면 되었다. 루카 22ㄴ-23절에서 바로 이 관습에 관해 말한다. 7절의 “첫아들” 역시 하느님 차지 아들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첫아들을 낳았다”는 구절을 논거로 해서 예수님 다음에 또 다른 아들을 낳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구유”라는 소재에는 위대한 메시아가 비천하게 탄생하셨다는 뜻이 있다. 또한 위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별나다는 뜻도 있겠다. 모세 아기가 골풀 바구니 속에 숨겨져 있었다는 일화 따위가 그렇다(출애 2.3). 어느 가정집 방일 수도 있고 여인숙 방일 수도 있다. 8절 목자들은 남의 풀밭에 짐승을 몰고가서 풀을 뜨기거나 자기 주인 몰래 양과 염소의 젖을 내다 팔거나 또는 양털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바로 이 못난 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뵙게 된다. 아울러 다윗도 본시 목동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10절 “큰 기쁨이 될 희소식을 알립니다”는 직역하면 “큰 기쁨을 복음 전합니다”. 11절 예수님의 세 가지 존칭 “구원자”, “그리스도”. “주님”. 14절 여기 천사들의 환호와 예루살렘 입성 때 제자들의 환호는 형식상 같다.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평와!”. 이 두 가지 또는 그 중 한 가지 환성은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부른 노래의 편린일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사랑받는 사람들”은 직역하면 “선의의 사람들”인데, 그 뜻인즉 하느님이 선의로 돌보시 는 사람들이다. 이는 예수시대 유다교 쿰란 수도원에서 비슷한 표현을 그런 뜻으로 사용한 사실로 뒷받침된다. 사실 쿰란 수도원 시가 4,32-33; 11.9에서는 “그분(하느님)의 선의의 아들들”이라 한다. 따라서 여기서 선의는 인간의 선의가 아니고 하느님의 선의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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