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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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2-12-31 | 조회수39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21231.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오늘은 “성탄 8부 내 7일”이며, 2022년을 마감하는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다보며, 오늘을 가져다 준 지난날들에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보낼 수 없었던 한해를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는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복음>을 통해서는 ‘한 처음의 날’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한 처음’의 놀라운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은 직역하면 ‘살을 취하였다’는 것으로 약함 안으로 들어온 것을 말하고, “사셨다”는 것은 ‘천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거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느님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어 오셨고, 사람이 되시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단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하느님 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엄청난 사랑을 말해줍니다. 교부들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까닭은 인간이 하느님 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오직 같아지는 것만이 구원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비우는’ 행위의 종착지는 ‘같아지는’ 것이요, ‘하나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은 또 다시 당신에게로의 변형을 가져옵니다. 곧 이러한 변화는 변화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다른 차원의 변화로 끌고 갑니다. 그것은 당신이 오시어, 우리와 같이 사시는 까닭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같아짐’을 통해 사랑이신 당신은 우리와 같아질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와 자리를 바꾸는 지점까지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곧 인간을 하느님이 되게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를 “놀라운 교환”(admirabile commerciu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이 되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바로 그 길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그저 자기 자신의 ‘아무 것도 아님’ 안에 머물면, 하느님께서 그 안에 들어와 ‘전부’가 되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주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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