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7 연중 제3주간 금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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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1-26 | 조회수47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많은 싸움을 견디어 냈으니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주해 32절 훈화의 마지막 부분인 32-39절은 목자들의 실생활과 관계되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훈화다. 저자는 독자들의 과거의 모범적 신앙생활을 회상시키며 용기를 북돋운다. 그 내용으로 보아 독자들은 신앙생활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런 고난 가운데서도 성실하게 믿음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빛”은 흔히 진리를 배우고 세례받는 것을 말한다. 길고도 어려운 싸움,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다. 33절 독자들이 직접 겪었던 신앙의 시련, 이를테면 박해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들도 몸과 마음으로 동료들의 고통에 동참했을 것이다. 34절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방문하고 위로했을 것이다. 로마법에서는 죄수들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재산도 몰수하곤 했다. 35절 산상설교 등에서 예수께서는 박해를 받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참된 행복을 약속하셨다. 37절 이사 26.20과 하바 2,3-4의 혼합 인용문이다. 특히 하바 2.4 인용문은 순서를 바꾸어 애매모호한 의미를 명확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훈화를 끝내면서 두가지 상반되는 생활태도를 제시한다. 그 하나는 인내와 믿음의 생화를 곧 믿고 바라는 바가 꼭 이루어지리라 확신하고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물러서는” 생활, 곧 세상살이에만 집착하여 그리스도께서 터주신 하느님께 이르는 생명의 길을 포기하는 생활이다.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결국 멸망하고 하느님의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직역하면 “얼마나 잠시”로서 아주 짧은 기간을 말한다. 초대교회는 주님께서 믿지 않은 장래에 재림하시리라 믿었다. 39절 이 “믿음과 인내”는 다음 항목(11.1-12.3)의 주제다. 복음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주해 저절로 자라나는 씨 비유 16-29절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인만큼 하느님 통치에 대한 상징적 이야기다. 그럼 예수께서는 하느님 통치의 어떤 면을 밝히시려고 이 비유를 드렸을까? 아무래도 비유의 흐름 전체를 눈여겨봐야만 그 뜻이 드러날 것이다. 비유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농부가 작은 씨앗을 뿌린다. 그런데 농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씨는 “저절로”자라서 열매를 가득히 맺는다. 다 익으면 엄청난 수확을 거두어들인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예수님의 신국사상을 참작하여 비유의 뜻을 이렇게 밝힐 수 있다. 하느님의 위력은 이미 예수의 인품과 언행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작은 씨앗 같아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그 위력은 점점 강력하게 작용하여 마침내 종말에는 엄청난 결과를 내고야 말 것이다. 하느님 친히 하시는 일이라 사람들이 보깅 경이롭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29절 29절은 요엘 4.13을 원용한 것이다, 묵시 14.15에서도 요엘 4.13을 원용했다. 겨자씨의 비유 같은 비유가 어록에도 있는데 거기서는 누룩 비유가 뒤따라 나온다, 그러므로 어록은 이중비유를 전하는 셈인데, 또 한 가지 이중비유를 든다면 마태오복음에만 전해오는 보물과 진주 비유다, 겨자씨 비유는 자라나는 씨 비유와 뜻이 같다, 하느님 통치는 작게나마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큰 영향력을 떨칠 것이며 마침내 종말에 가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뜻이다. 31절 통념에 따라 겨자씨를 가장 작은 씨앗이라 했을 뿐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그보다 작은 씨앗이 많을 것이다. 성서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32절 여기 “푸성귀”는 사람이 가꾸는 채소를 일컫는다, 겨자는 보통 1.5미터.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는 3미터까지 자란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나라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는 사상이 32ㄴ절에 들어 있을 수 있다. 비유로 말씀하시다 33절은 마르코복음 집필 전 비유 집성문의 결론이고, 34절은 마르코 자신의 결론이다. 사실 10-25절에서처럼 34절에서도 마르코는 “제자교육”을 강조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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