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중심의 삶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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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2-03 | 조회수516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하느님 중심의 삶 -성덕의 훈련, 전례와 삶의 일치-
“주께서 나의 빛 내 구원이시거늘, 내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께서 내 생명의 바위시거늘, 내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오늘 복음은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다음의 반응’과 ‘세례자 요한에 대한 죽음’의 두부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앞서 헤로데의 예수님의 출현에 궁금해 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 났구나.”
예수님의 놀라운 활약에 즉시 세례자 요한을 연상한 헤로데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비록 죽었지만 이어달리기 경주처럼 세례자 요한에 이어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예수님이 바톤을 이어 받고 달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대활약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죽은 다음 예수님의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도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당신이 택한 사람을 통해 중단없이 계속됨을 봅니다. 아마 우리 수도원의 앞으로의 역사도 그러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헤로데의 극명한 대조가 우리에게는 귀한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의 잣대로 보면 더욱 분명히 구별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중심의 삶이 확립된 분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받쳐주는 성덕의 훈련도 참으로 잘된 분입니다. 아무리 선의善意를 지녔어도 성덕의 훈련을 통한 습관화로 하느님 중심의 삶이 확고하지 않으면 한결같기는 힘듭니다.
참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했던 겸손하고 정의로웠던 성덕의 사람, 세례자 요한임을 깨닫습니다. 얼마나 많이 사느냐의 삶의 양이 아닌 어떻게 참으로 의인으로 사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느님 정의의 잣대로 수차례 간한 의인 세례자 요한이요 결국은 헤로디아의 미움을 사서 급기야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반면 헤로데는 삶의 중심도, 성덕의 훈련도 없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세례자 요한에 대한 헤로데의 선의를 인정합니다만 역시 힘이 없었고 한결같지 못했음을 봅니다. 다음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선의를 지닌 헤로데였지만 하느님 중심의 삶도, 성덕의 훈련도 턱없이 부족했기에 우유부단함과 분별력의 결핍으로 인해 급기야 헤로디아의 간계의 유혹에 떨어져 세례자 요한을 죽게 만듭니다. 세례자 요한과 비교할 때 너무나 부족한 헤로데의 모습입니다.
선의로만으론 부족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항구한 성덕의 훈련이 필수입니다. 이래야 좋은 분별력도 지닐 수 있고 한결같은 성덕의 삶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제가 참 많이 강조하는 것이 훈련입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은총의 선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은총의 선물처럼 좋은 선택을 했다면 집중적이고 한결같은 훈련의 노력을 통해 습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들면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으로 삽니다. 훈련되어 습관화되지 못하면 후에 아무리 노력해도 별무소득입니다. 괴물이나 폐인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성덕의 훈련으로 좋은 습관이 이뤄졌다면 치매에 걸려도 고운 치매가 될 것입니다.
성덕도 훈련입니다.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기도도 침묵도 찬미도 감사도 기쁨도 순종도 도대체 훈련 아닌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은총으로 좋은 선택을 했다면 집중적이고 항구한 훈련의 노력으로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점에서 세례자 요한은 모범이지만 헤로데는 완전 실격입니다.
어제 주님 봉헌 축일에 봉헌도 훈련임을 강조했습니다. 어제 복음 끝부분을 다시 인용합니다. ‘하루하루 일상의 봉헌 삶에 충실할 때 마지막 봉헌의 축복된 죽음입니다. 봉헌의 은총, 봉헌의 선택, 봉헌의 훈련, 봉헌의 습관입니다.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우리가 평생 매일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봉헌의 선택은 은총이자 동시에 훈련이 됩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는 훈련해야할 덕목의 수행이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섬김의 삶이자 참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덕목입니다. 앞서 나온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성덕의 훈련이요, 앞서 히브리서 12장 28절 말씀입니다.
“감사와 함께 존경과 경외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를 드립시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의 열매가 바로 성덕의 실천이요 훈련입니다.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 공동체, 전례공동체이자 하느님 중심의 참된 공동체를 위한 구체적 이고 현실적인 수행 덕목입니다. 혼자의 삶이 아니라 더불어의 삶을 위한 구체적 실천과 훈련의 삶입니다.
1.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2.손님 접대를 즉 환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3.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4.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5.불륜을, 간음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6.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십시오. 7.하느님의 말씀을 일러준 지도자들을 기억하고, 이들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살펴보고 이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맞갖는 구체적 성덕의 실천이요 훈련입니다. 말그대로 전례와 삶의 일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전례공동체의 수행이자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참으로 우리가 항구히 사랑하고 배우고 따라야 할 분은 우리 삶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주시고 성덕의 실천과 훈련에 매진邁進할 힘을 주십니다.
“이 내 마음 당신께 아뢰옵고, 이 내 얼굴 당신을 찾고 있나이다 주여 당신 얼굴을 찾고 있사오니 그 얼굴 나에게서 감추지 마옵소서.”(시편27,8-9ㄱ).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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