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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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2-03 | 조회수25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주해 15절 15-16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바쳐야 할 찬미의 제사를 권하면서 그 내용을 설명한다. 구약의 찬미제사는 땅의 열매인 음식을 바치는 것이었으나, 신약의 찬미제사는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와 선행, 나눔 등 거룩한 삶의 열매를 바치는 것이다. 16절 “선행”과 “나눔”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는데, 선행은 일반적 의미 외에 특히 지혜문학에서는 의로운 이나 가난한 이를 돕는 행위를 가리킨다. 나눔은 친교, 일치. 참여 등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행위를 뜻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제사를 배척하고 선행과 나눔의 제사를 강조했다. 17절 7절에서는 이미 타계한 지도자들에게 관해 언급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도자는 공동체를 현재 책임진 사람들이다. 이렇게 항목의 시작과 끝에 지도자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은 훈화 자체도 지도자들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들 지도자들은 공동체 전체와 그 구성원 각자에 관해 책임을 지고 끊임없이 일하며, 종말에는 그들의 직무 수행에 관한 셈을 치룰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큰 어려움 없이 기쁘게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공동체는 그들의 가르침에 적극 순종해야 한다. 20절 20-21절은 강론을 끝맺는 전례 형식의 장엄한 축복과 영광송으로, 강론 내용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히브 10.29; 12.24; 13.11-12; 이사 55.3;61.8; 예레 32.40; 50.5; 에제 16.60; 37.26 참조. 이사 63.11 참조,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양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에 비유하곤 했다(요한 10.11; 1베드 2.25). 그리스도의 부활을 일컫는다. 12,14 참조, 바오로의 편지에도 자주 나오며, “구원의 하느님” 또는 “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표현과 비슷하다. 21절 히브리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매우 강조하는데, 이는 데제관이신 그리스도의 참모습이기도 하다. 책 전체를 끝맺고 날인하는 영광송이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영광송인지 아니면 예수께 향한 영광송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복음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주해 30절 30절에서 보고하는 내용은 지극히 추상적이다. 마르코는 아무런 전승사료 없이도 오직 열두 제자를 파견하신 이야기를 참작하여 쉽게 이처럼 추상적인 보고 내용을 엮을 수 있었다. 31절 “따로”는 마르코가 즐겨 쓰는 표현. 예수께서도 “외딴 곳”으로 가신 젓이 있다. 마르코는 35절에서 암시를 받아 6.31.32에도 “외딴 곳”을 내세웠을 것이다. 3.20과 흡사하다: “군중이 다시 모여와서 그분 일행은 빵을 먹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마르코는 예수께 군중이 모여든다는 소재를 무척 좋아한다. 34절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사화는 본디 34절부터 시작되었으리라. 그런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동기를 들어 8.2에서는 “그들이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여기서는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기 때문이다”한다. 구약성서를 보면 야훼는 목자시다, 모세는 목자 같은 지도자를 주십사고 하느님께 간청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는 대부분 목자처럼 처신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참 목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참 목자 예수께서 오셔서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다.
마르코는 예수의 가르침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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