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6 연중 제6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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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2-15 | 조회수50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4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복음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27-33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주해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전승자 혹은 마르코는 예수의 정체에 관한 군중의 여론과 베드로의 고백을 한데 묶어 스승과 제자들간의 대담을 만들었다, 이 두 가지는 본디 따로 전해온 독자적 전승요소였다. 오히려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 공생활 때의 사실보도이기보다 예수 부활 이후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라는 인상이 짙다. 사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사건들을, 특히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선포하고 믿기도 했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정체를 밝혀 “예수께서 주님이시로다”,“예수께서 그리스도시다”라고 환성을 질렀던 것이다. 베도로의 답변은 바로 이 환성의 변형이다. 환성이야말로 가장 깊이있는 신앙고백이다. 27절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이며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의 이복 동기인 헤로데 필립보가 헤르콘 산 아래 지하수가 펑펑 솟아나는 자리에다 기원전 2년경에 세운 도시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백리쯤 되는 곳, 지금은 “바니야스”라 한다. 지금까지는 예수께서 자주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다니셨으나 이제부터는 가이사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길”을 가신다, 그분이 예루살렘에서 처형되신만큼 거기로 가시는 것은 죽음에의 행진이다. 30절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나 영화를 누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실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사건이 있기 전에는 당신 정체를 알리지 못하도록 함구령을 내리신다.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베드로가 예수의 정체를 밝혀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고백했으니 이제 어떤 의미의 그리스도신지 보충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르코는 세 번 거듭 수난과 부활에 관한 예고를 실어 수난하고 부활하시는 그리스도임을 강조한다. 31절 “가르치기 시작하다”는 전형적인 마르코 문체다. 이 복음서에 “가르치다”는 17번, “...하기 시작하다”는 26번쯤 나온다. 여기서 “인자”는 고난당하는 인자. “마땅히 ...해야 한다”에는 하느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원로들은 유지들을, 대제관들은 중견 제관들을, 율사들은 주로 바리사이계 율법 전문가들을 뜻한다. 이들이 모여 최고의회를 구성했는데 실지로 예수 수난의 주역들이었다. 수난의 주역 열기는 사후예언이다. “사흘 후에”,“사흘 안에”는 같은 뜻이다. 31절에서 죽음과 부활 사이을 3일로 잡은 것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선포문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제 선포문에서 그렇게 부활임을 명시한 이유에 관해 세 가지 설이 있다. 32절 “명백히”는 공관복음 전부를 통틀어 여기에만 나오는 낱말이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당신이 고난받으실 것을 “명백히” 말슴하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했으나 수난하는 그리스도이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승을 나무란 것이다. 33절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길을 가면 스승은 앞서가고 제자는 뒤따라갔다. 그러므로 “내 뒤로 물러가라”하신 말씀은 베드로가 제자의 위치로 돌아가 스승을 따를 생각을 하라는 뜻이다. 사탄은 귀신들의 두목. 베드로는 사탄의 사주를 받아 예수께서 고난의 길을 가시라는 것을 만류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때입니다. 고등학교시절 절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교황이 높으냐? 대통령이 높으냐?’라는 것으로 설전을 벌였습니다. 그 친구가 대통령이 높다고 해서 나는 “앞서서 가는 사람이 뒤 따라오는 사람보다 높아.”라고 했습니다. 물론 교황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지만 가르침을 주고 받는 사이라면 말입니다. 그 당시 티브이에서 교황님이 앞서가고 노태우 대통령이 그 뒤를 따라걷고 있는 장면이 방영되었지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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