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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선포의 삶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0-22 조회수362 추천수4 반대(0) 신고

 

-안으로는 제자, 밖으로는 사도-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어지신 그 얼굴을 우리에게 돌이키소서.”(시편67,1)

 

연중 제29주일이자 제97차 전교주일인 오늘, 우리는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 밖으로는 주님의 사도가 되어 복음 선포의 삶을 삽니다. 바로 이것이 믿는 이들의 신원입니다. 전교주일을 맞이하여 새롭게 확인하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은 교회는 물론 우리 모두의 존재이유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 중심의 복음 선포의 삶에 충실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은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여라.”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누구나 예외 없이 복음 선포의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교황님은 전교주일 담화에서 “타오르는 마음, 움직이는 두 발”(루카24,13-35참조)을 주제로 세 부분에 걸쳐 참 유익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1.“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올랐습니다. 선교 활동에서 하느님 말씀은 마음을 밝혀주고 변화시킵니다.

2.빵을 떼어 주실 때에 우리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 사명의 원천입니다.

3.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기쁨으로 우리는 두 발을 떼어 길을 떠납니다. 언제나 밖으로 나가는 교회는 영원한 젊음입니다.

 

우리의 복음 선포의 삶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랑과 기쁨, 감사와 행복의 복음 선포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삶의 자리, 바로 거기가 복음 선포의 현장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을 널리 알리는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로서 우리의 삶입니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꼭 세 번째 강조하는 말마디가 간절함입니다. 

 

“저의 성소는 간절함입니다. 하루하루 수도생활에 전념하게 하는 것도, 날마다 한밤중 일어나 강론을 쓰게 하는 것도 이 간절함입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수도형제들 하나하나의 성소가 간절함이요 이 간절함으로 삽니다. 이 간절함이 무너지지 않고 견뎌내고 버텨내고 감당하게 하는 힘입니다. 이런 간절한 믿음, 간절한 희망, 간절한 사랑, 결국은 주님으로 모아지는 간절함입니다. 이 간절함은 저절로 주님 사랑을 나누는 복음 선포의 삶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어제 써 여러분들과 나눴던 “모두가 다 좋다”라는 짧은 시를 나눕니다. 사랑과 감사, 기쁨과 행복이 응축된 시입니다.

 

“햇빛 밝은 날은

 햇빛 밝은 날대로 좋고

 비오는 날은

 비오는 날대로 좋고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좋고

 모두가 다 좋다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의 삶의 자리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자 목자이자 스승이자 도반이신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자 자랑입니다. 오늘 복음말미에서 주님 친히 주신 약속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세상 사람들 다 떠나도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임마누엘 하느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이 주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우정이 관상의 제자, 활동의 사도가 되어 복음 선포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데 결정적 요소가 됨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복음 선포의 삶에 우선적 전제가 주님과의 만남이요 공부입니다. 이래서 파견에 앞서 날마다 한결같은,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공부를 통한 주님과의 관상적 만남이 절대적입니다. 이사야의 꿈이자 비전은, 환시는 이미 오늘 지금 여기서 거룩한 모임인 미사공동전례로 부터 실현되고 있습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주님의 산이 상징하는 바, 어디에서나의 성전입니다. 바로 주님을 만나는 오늘 지금 여기 미사전례의 성전 자리가 영적 시온이요 예루살렘입니다. 주님을 만나 기도도 말씀도 배우고 익혀야 하며 성체도 모셔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 일찍이 성 예로니모는 갈파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귀를 열어주어야 성경을 알 수 있고 성경을 알 때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다. 

 

날마다 거행하는 성찬례가 교회의 삶과 사명의 원천이자 정점일진대 성찬의 빵을 모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음 이사야의 평화의 꿈은 얼마나 황홀하고 멋진지요! 무엇보다 하느님의 원대한 평화의 꿈을 배우는 우리들이요, 복음 선포의 현장에서 평화의 주님과 함께 평화의 사도가 되어 이 평화의 꿈을 실현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작금의 전쟁의 시대에 얼마나 화급한, 절박한 주님의 평화인지요! 정말 마음 설레어 뛰놀게 하는 아름다운 평화의 꿈, 평화의 이상입니다. 복음 선포의 삶은 바로 이런 평화의 꿈을 실현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우리 삶의 자리가 복음 선포의 현장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평화를 실천하며 주님의 빛속에 걸어가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을 배우고 공부했으면 관상의 제자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주님 평화의 사도가 되어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되어야 합니다. 주변 모두가 복음 선포의 대상이자 구원의 대상입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참으로 복음 선포의 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심금을 울립니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기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관상의 제자로 안주할 것이 아니라 주님 평화의 사도로, 또 하나의 예수님이 되어 복음 선포의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저절로 찬탄을 받을 것입니다. 참으로 최고의 매력적인, 아름다운 모습은 주님의 빛으로 가득한 복음 선포자의 삶일 것입니다. 끝으로 두 분의 성인의 예를 들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극찬한 다시 소개하는 사막의 성자 샤를로 후코입니다.

 

“미소로, 단순함으로 성 샤를로 형제는 복음을 증거했다. 결코 결코 개종이 아닌, 바로 증거다. 복음화는 결코 개종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증거(witness), 사랑의 매력(attraction)을 통해 이뤄진다.”

 

이어 14세기 영국의 신비가 노리치의 율리안나가 전하는 말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깊은 통회와 연민과 함께 하느님을 향한 참된 열망을 지니고 온유해질 때, 하느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그분의 은총으로 드높여집니다. 그때에 죄와 고통에서 플려나 지복으로 들어 올려지고 마침내 성인이 됩니다. 우리는 통회로 깨끗해 지고, 연민으로 준비를 갖추며, 하느님을 향한 참된 열망으로 의로워집니다. 이는 모든 영혼이 천국에 이르는 세가지 방법입니다.”

 

참으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앞당겨 살게 하는 통회와 연민, 하느님 향한 열망은 복음 선포자의 기본적 자질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마다 주님의 사랑의 빛과 향기를 전하는 매력적인 평화의 사도로, 또 통회와 연민과 열망의 사도로 살게 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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