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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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4-16 | 조회수410 | 추천수3 | 반대(0) |
교우 분들과 대화 중에 ‘서울 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서울 신학교를 나온 신부님들이 인품이 좋고, 사목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저도 서울 신학교를 나왔기 때문입니다. 군인들 중에도 해병대, 특전사, 공수부대 출신들이 있습니다. 일반 군인들도 나라를 위해서 복무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특수한 부대에서 복무한 군인들은 나름대로 자부심과 명예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하는 전역 자들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난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 중에서 ‘청년성서공부’를 했다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이 먼 미국까지 와서 열심히 봉사 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의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청년성서공부를 통해서 얻었던 신앙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청년꾸르실료를 체험했다는 분도 보았습니다. 그분도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는 원동력은 청년꾸르실료에서 신앙의 기쁨을 체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는 두 개의 날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성에 근거한 교리와 신학입니다. 교회는 교리와 신학을 토대로 교계제도를 설립하였습니다. 교리와 신학을 토대로 이단을 구별하였고, 세상의 논리에 대응하였습니다. 교리와 신학을 체계화 시킨 사람은 바오로 사도가 있습니다. 교리와 신학을 확립한 분들을 ‘교부’라고 부릅니다. ‘예로니모,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는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신앙으로 교리와 신학을 정립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에 근거한 영성과 은사입니다. 신앙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이 있습니다. 신앙은 이성적으로는 이해 할 수 없는 차원도 있습니다. 물리적인 법칙을 초월하는 차원도 있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카리스마’라고 이야기합니다. 카리스마에는 많은 은사가 있습니다. 예언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심령한 언어를 하는 은사, 심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의 최종 목적은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 전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안토니오, 베네딕토, 십자가의 성 요한, 프란치스코, 아빌라의 데레사와 같은 분들은 영성과 은사를 정립하였습니다. 교리와 신학은 영성과 은사를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영성과 은사가 없는 교리와 신학은 자칫 차갑고, 무미건조할 수 있습니다. 영성과 은사는 활력을 주는 기운과 같습니다. 교리와 신학이 없는 영성과 은사는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악의 세력도 영성과 은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와 신학에서 벗어난 영성과 은사는 때로 이단으로 흐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나의 신앙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교리와 신학이라는 그릇은 견고한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의 서적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영성과 은사라는 활력은 충만한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는 영적인 기운을 충전할 수 있는 신심단체들이 있습니다. 신심단체와 함께 한다면 신앙생활에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리와 신학 그리고 영성과 은사의 날개가 튼튼한 신앙인은 두려움 없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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