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제가 아침 식탁에서 특별한 숫자를 자주 셉니다. “8,000!”“7,999!” 아직 남아있는 살아갈 날의 숫자를 세는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적으로 좋은 노력입니다. 남아있는 날수를 헤아리며, 죽음을 묵상하고, 하루하루가 소중하기에 더욱 충만한 하루를 살고자 하는 짧은 피정입니다. 저도 작년 종합건강 검진 후에 기대 수명 몇 살이라는 판정을 받았는데, 그래서 헤아려 보니, 남은 날은 이제 겨우 7000일 남짓입니다. 갑자기 이렇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뜨뜨미지근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불꽃처럼 활활 타올라야 하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어떤 날 하루를 돌아보고 나면 참으로 기가 막힌 날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빈둥빈둥한 날입니다. 이제 남은 날도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인데, 이걸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생깁니다. 그보다 더한 하루는 하루를 완전히 망쳐버린 날입니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 좌충우돌 이웃들과 부딪치고, 나나 상대방이나 크게 상처 입은 마이너스의 날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기쁨과 보람으로 충만한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은 주로 사랑을 만난 날입니다. 크신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한 날입니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이웃 사랑에 몸 바친 날입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하루를 살아도 영양가 있는 삶을 산다는 것, 하루를 1년같이, 하루를 영원처럼 산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빵을 먹는 우리는 언젠가 맞이하게 될 마지막 순간, 지상에서의 모든 순례 여정을 내려놓고 드디어 하느님을 뵙는 결정적 순간의 영원한 삶도 중요하겠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내 헌신과 내 사랑의 실천으로 이웃들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차는 순간, 우리는 순간적이나마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는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야만 합니다. 미사 중에 우리는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는 구원의 파스카 신비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성체 순간,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죄인인 우리 인간이 합일하는 너무나 은혜롭고 행복한 순간, 결정적 구원을 미리 맛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머나먼 훗날, 젊음이 지나가고,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인생의 9부 능선을 넘은 후에야 맛보기보다는, 지금부터 맛보기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구원의 성체,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의 성체를 모신 우리가 이 지상에서 최고의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을 동반자들과 나누며 만끽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벌써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