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배신으로 갚고,
받은 덕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바로 배은망덕을 톡톡히 경험합니다.
그렇게 열렬히 복음을 전해줬는데 그러니까 은혜를 베풀었는데,
바오로와 바르나바 덕분에 참 행복과 구원을 얻을 수 있었는데,
무슨 개뼈다귀 같고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기나 하느냐고
사람들은 모독적인 말로 오히려 은혜 갚음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는 나도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닌지.
다른 하나는 누가 내게 배은망덕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 생각에 은혜와 덕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도 배반하거나 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가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덕인지 몰라 그러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사실 오늘 사도행전의 유다인들에게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고마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이 전해준 복음이 자기들에게 행복과 구원을 주는 복음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이방인들이 그들에게 몰려드는 것을 보고 시기심에 꽉 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아직 맛보고 깨닫지 못하였다면,
주님의 복음이 아직 내게 참 행복과 구원의 말씀이 되지 못한다면,
그래서 주님의 말씀보다 돈을 주는 것을 내가 더 은혜롭게 여기는 수준이라면,
복음 선포가 내게는 은혜도 아니고 덕을 나눠주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은혜로 알 줄 알아야 하고,
덕을 덕으로 알 줄 알아야 배은망덕하지 않고,
‘네 덕 내 탓’할 줄 알아야 배은망덕하지 않을 겁니다.
네 덕에 그 귀한 복음을 알게 되었는데
내 탓으로 그 복음을 잘살고 있지 못하다고.
다음으로 다른 사람이 내게 배은망덕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입니다.
배은망덕해도 그것으로 불행해지지 않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은혜를 베풀고도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 하나이고,
은혜를 베풀고 고맙다는 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제 생각에 돈이나 재물과 같이 세속적인 무엇을 주는 것은,
그것을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 아예 생각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돈이나 재물을 대단히 은혜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꼴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줘버리고 말고
줬다는 기억조차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은 진정 은혜로운 것을 주는 것이지요.
우리는 은혜롭지 않은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 은혜로운 것을 주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이전에 주님의 말씀을 진정 은혜로운 것으로 여기는 내가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내가 은혜롭게 여기는 주님 말씀을 전해줬는데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오늘 바오로와 바르나바처럼 모독적인 말을 듣게 되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배은망덕이라고 분노해야겠습니까?
만일 주님 말씀을 전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할 때 배은망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정 주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 전한 것이며,
그를 위해서 전한 사랑의 말씀이 아니고,
주님 말씀으로 충만하고 고맙고 행복한 사람의 사랑 나눔이 아니지요.
주님의 그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줬는데 고맙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은 분노가 아니라 안타까움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은혜로운 말씀이 은혜롭지 않은 그가 딱하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주말이 되면 또는 행락철이 되면
제가 강론을 올려도 많은 분이 읽지 않으시거나 읽지 못하십니다.
그때 애써 주님 말씀을 나눴는데 읽지 않는다고 제가 분노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냥 애석하고 안타까워할 뿐이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