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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1주간 수요일 복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03 조회수3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의 내용도 익히 잘 아는 내용의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대목을 유심히 보고자 합니다. 제자들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구자, 병든 이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치유를 받은 병자들을 보고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한 사람들은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때 이 사람들이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알 리가 만무했을 텐데 왜 어찌 해서 병을 직접 고쳐주신 예수님을 찬양해도 찬양해야 하는데 하느님을 찬양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그당시 사람들은 실제 설령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의 아들인 성자의 위격을 가진 것 자체를 이해를 못했다고 할지라도 자기들이 치유된 기적의 은총은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인지했나 봅니다. 이런 사실도 실제 그당시 그와 같은 사람들의 지적인 수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오늘날 상식으로 보면 한편 놀라운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봐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당시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 이하의 수준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에 복음에 비유가 많이 등장했다고 하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같은 수준의 사람이었다면 복음에 비유가 많이 나오지 않았을 거란 추측도 해본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실 어떤 문제가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 제자들의 모습을 냉철하게 들여다 봤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해 주신 후에 그때 그 군중들의 모습을 보시고 마음이 무척 아프셨습니다. 3일 동안이나 같이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 상태로 돌아간다면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 상황 이후에 제자들의 반응을 우리는 조금 깊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빵을 어디서 구하겠느냐 하는 반응입니다. 이런 반응을 보인 제자들의 모습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여기에선 이런 반응을 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 말씀에 공감을 하고 같이 걱정하는 일이 우선시 됐어야 했습니다. 그런 연후에 그런 입장을 표명하는 게 순리입니다. 

 

물론 어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상황이 아니니 별반 차이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결과로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는 정해진 일반상식대로만 살 수 있는 게 다가 아닙니다. 그렇게만 산다면 인간세상이 삭막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람사는 세상은 로봇 같은 아무런 감성과 감정이 없는 기계가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기계와 달리 인간적인 정이란 게 마치 인간세상을 온전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게 무엇보다도 더 필요하고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도 법을 집행하고 판단을 할 때 물론 법대로 해야 하겠지만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처럼 매정하게 법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상참작이라는 걸로 양형을 하는 경우도 있듯이 말입니다. 그럼 이와 같은 것을 우리 교회에 접목해서 한번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지 한번 묵상해봤으면 합니다. 사랑, 연민, 측은지심 이런 말처럼 이런 걸 우리는 수도 없이 듣곤 합니다. 이런 말이 그냥 단순히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 말씀이 우리의 피부에 와 닿아 그게 현실적으로 실천을 할 수 있고 진정으로 공감을 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말만 신앙인이고 종교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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