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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주님과 함께 가는 것이 곧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1-15 조회수55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마르 1,29-39).”

1)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장모를 고쳐 주신 이야기는,

“예수님은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라는 증언입니다.

이 증언은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증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것만으로

병을 고치신 일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 당신의 권한과 의지만으로 ‘병’을 쫓아내신

일이고, 병을 지배하는 주님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일입니다.

이 이야기가 루카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루카 4,38-39).”

‘열을 꾸짖으시니’는 ‘열’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다는

뜻이고, ‘열이 가셨다.’는 그 ‘열’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떠났다는 뜻입니다.

루카복음의 기록은, “예수님은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좀 더 구체적인 표현으로 나타낸 증언입니다.

2) 예수님께서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신 일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권한과

권능을 가지고 계시는 주님”이라는 증언이기도 하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이라는 증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억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인데, 그 억압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병마(病魔)의 억압’입니다.

오늘날에도 온갖 질병의 고통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고통들 가운데에서 첫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몸의 건강’을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물론 ‘몸의 건강’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몸의 건강’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는 “마귀들이 당신을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안 믿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아는 척’을 하는 것일 뿐이고,

사실은 그것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자격 자체가 없습니다.>

3)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닌 것은,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라고 예수님을 붙들기 위해서인데, 그들의 심리는

‘빵의 기적’ 후에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요한 6,15)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합니다.

‘빵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몸의 배부름’만 원했던

것처럼, 카파르나움 사람들도 ‘몸의 치유와 건강’만을

원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라고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거절하십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라는 말씀에는, “너희는 ‘몸의 건강’만을 찾지 말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힘써라.”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과 마리아 막달레나가 만나는 장면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6-18).”

아마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알아보자마자

너무 기뻐서 예수님 곁에만 있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는 ‘가서’ 부활 소식을 알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을 누르고, 주님이신 예수님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 그것이 진짜로

예수님 곁에 머무르는 것이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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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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