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7주간 수요일] | |||
---|---|---|---|---|
작성자박영희
![]() ![]() |
작성일2025-02-26 | 조회수48 | 추천수3 |
반대(0)
![]() |
[연중 제7주간 수요일] 마르 9,38-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어제 복음에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가 부족하여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했던 제자들이, 그런 일을 겪고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지 믿음이 깊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마음이 더 옹졸해진 모습을 보입니다. 제자단에 속하지 않은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는 질투심과 자격지심이 생겨서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조치를 취할 정당한 이유도 명분도 부족했기에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에 마음이 상한 요한이 제자들을 대신하여 예수님께 그 상황에 대해 ‘고자질’하기에 이릅니다. 또래 친구와의 싸움에서 진 어린 아이가 분하고 원통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달려가 자기 대신 그 친구를 좀 혼내달라고 청하는 것과 비슷한, 참으로 미성숙한 모습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그 사람에 대해 성토하면서 ‘저희’라는 말을 세 번이나 강조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 뒤를 따르는 자기들이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감히’ 우리 편도 아닌 이가, 예수님과 함께 하며 그분 뜻을 따르기 위해 수고도 고생도 하지 않는 이가 자기들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구마에 성공했으니 그 모습이 아니꼽게 보였겠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즉 교회에서 ‘우리’라는 특정 세력이 주도권을 잡고 주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면 교회는 ‘나만 옳다’는 교만과 독선,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런 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아니지요.
비단 교회 공동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사람들은 ‘편’을 갈라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표출되면 ‘스포츠’가 되고, 부정적인 에너지로 변질되면 ‘패싸움’이 되는 겁니다. 끊임 없이 편을 갈라 상대방을 증오하고 싸우는 패싸움은 우리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지요. 그러니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안 된다’는 특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되지만 너희는 안 된다’는 차별과 배척의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누구 편에 서는가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비추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분 뜻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와 너희라는 구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같은 믿음 안에서 구원과 참된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동료이자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팍팍한 우리 삶에 동료와 형제는 많을수록 좋지요. 그러니 편 가르고 싸우는 일은 이제 제발 그만하고 마음과 뜻을 모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