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월요일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요한 3.8) 나에게 부활 2주간은 어떤 시기일까... 그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부활해야 한다는 초대를 받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옛 인간"을 벗고, "새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옛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으로 살아나도록 초대받아, 내 안에 예수님의 부활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기를 청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니코데모는 이 말씀을 바로 알아들었을까요? 마음을 기울여 복음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면, 그 자리에서는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늙은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한단 말입니까?" 사실, 저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너무 이성적이고 물리적인 차원으로만 이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다른 장면들을 보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니코데모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불법적으로 심판하려 할 때, 조심스럽게 예수님을 변호합니다. (요한 7장 51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니코데모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합니다.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나 준비해서 가져옵니다.(요한 19장 39절) 이것은 단순한 존경이나 친절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는 표지입니다. 더 이상 몰래 예수님을 변호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곁을 지킵니다. 이 변화야말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의 걸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니코데모의 영적 여정을 따라가며 저도 비로소 오늘 복음의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때로 복음은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어려운 복음을 전하는 세상 깊숙한 곳까지 전하는 방법은, 오늘 니코데모처럼 조용히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소서, 성령님, 저를 당신께 맡깁니다. 가야 할 길을 묻지 않고, 당신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게 하소서. 저를 당신 숨결에 실어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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