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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30 조회수129 추천수5 반대(0)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한인 성당엘 다녀왔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보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있는 것을 찾으며 감사드린다고 합니다. 비교하는 사람은 없는 것을 찾으면서 불평한다고 합니다. 본당의 전례에서 신부님의 따듯한 배려와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도 할 때도 신부님은 직접 선창하면서 교우들이 연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성모 신심 미사에도, 성 시간에도 신부님은 교우들이 묵상할 수 있도록 성가를 선곡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이렇게 정성을 다하니, 하느님께서 많은 봉사자를 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들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는 말하지 마라" 그러자 사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도들은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실제로 감옥에도 갇히고, 매도 맞고, 심지어는 목숨의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복음을 선포하러 다시 나섭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도들의 마음속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진실, 그리고 그분이 정말 생명의 주님이라는 확신입니다. 그 진리를 경험하고 나니까, 세상의 권위나 명령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런 모습은 교회 안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그는 아테네 법정에 서서, 사람들이 왜 자꾸 철학 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신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악한 삶보다 죽는 것을 택하겠다.” 결국 그는 국가가 정한 법과 체제에 맞서 양심과 진리를 따르는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사람, 마르틴 루터도 있습니다. 그는 중세 교회의 권위 앞에서, 잘못된 신학과 부패한 관행을 지적하며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를 도우소서.” 그의 이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자신의 양심에 충실히 하고자 했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입니다. 히틀러의 독재 앞에서 교회가 침묵하거나 순응할 때, 그는 신학자로서 이렇게 말합니다. "침묵은 동조다. 교회는 불의 앞에 말해야 한다." 그는 결국 감옥에 갇히고, 교수형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지금도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심의 목소리로 살아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진리와 진실을 찾으려는 이들을 통해서 인류의 가슴에 묻혀있던 양심을 깨우쳐 주십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단이 내려진 적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한 판결이 있습니다. 당시 재판관은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파면하지 않으면서 얻는 이익보다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통치권자의 권위보다 헌법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 결정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지만, 국민을 위한, 정의를 위한,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이 두 장면은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하나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진리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침묵을 강요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눈치 보지 않고 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사도들처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바라셨고, 그래서 아들 예수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아들 예수의 말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로부터 내려오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욕망, 시기, 질투, 불신, 분노, 원망의 삶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서로 신뢰한다면, 함께 나눈다면, 조건 없이 사랑한다면 바로 이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어두움 앞에서 진리를 외면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말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의 양심이 깨어 있을 때, 세상은 희망을 봅니다. 오늘도 우리가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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