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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30 조회수37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도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16-21).”

1) ‘내가’ 정말로 견디기 힘든 고통과 불행 속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 ‘나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묻고 싶기도 하고, ‘나의 고통에’

관심이 있기나 한 것인지,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나에게’ 왜

이런 고통과 불행을 주시는지 묻고 싶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니 우리도 고통과 불행

속에 있는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말이 ‘상투적인 말’로만 들릴 때가 많습니다.

그 고통과 불행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면......>

2) 구약성경의 ‘욥기’를 보면,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은, “네가 무슨 죄를 지었으니까 그런 고통과

불행을 겪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하느님을 원망하지

말고 회개하여라.”입니다.

그 말에 대해서 욥은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하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그 심정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어떤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다. 회개하여라.”

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가혹하고 잔인한 일이 됩니다.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는 당사자 자신도 그런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짓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 때문도 아니고, 하느님의 무관심 때문도 아니라면,

도대체 고통과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구약성경 ‘욥기’에도 속 시원한 답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고통도 ‘신비’ 라고 부릅니다.

인간 세상의 그 많은 고통들 가운데에는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을, 우리가 겪는 고통과 불행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

눈에 보이는 세상도, 지금 살고 있는 인생도,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지금 겪는 고통과 불행도

스쳐 지나가는 잠깐 동안의 일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히브 12,7.11).”

3)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에서 ‘심판’은 ‘처벌’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처벌’이 아니라 ‘용서’이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입니다.

이 말을 고통과 불행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겪는 고통과 불행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그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고통과 불행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

하느님은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라는 말씀의

‘심판’은 ‘멸망’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용서와 구원을 받게 된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싶으면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라는 말씀은,

“믿지 않는 자, 즉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자는

스스로 멸망을 향해서 가는 자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용서와 구원을 안 주셔서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데도 안 받아서 못 받는 것입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라는 말씀은, 살던 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곧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믿음과 회개를 거부하는 것은 빛을 미워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곧 악입니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죄가 없는 척 한다.” 라는 뜻입니다.

<헤로데의 경우에, 그는 자기의 죄를 꾸짖는 세례자 요한을

죽임으로써 요한의 입을 막고 죄를 덮으려고 했지만,

더 큰 죄를 지은 일이 되었을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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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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