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노동은 ‘사랑’이고, ‘선한 일’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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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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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5-01 | 조회수62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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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마태 13,54-58).”
1)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노동은 ‘사랑’이고, ‘선한 일’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선한 일도 아니고, 사랑도 없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노동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벨탑을 쌓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주해 오다가 신아르 지방에서 한 벌판을 만나 거기에 자리 잡고 살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 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온 땅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그러자 주님께서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세운 성읍과 탑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보라, 저들은 한 겨레이고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일 뿐, 이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자.’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읍을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기 때문이다(창세 11,1-9).” 벽돌을 구워 내고, 그 벽돌로 성읍을 세우고 탑을 쌓는 일은, 겉으로만 보면 분명히 ‘노동’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그래서 ‘악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일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으셨고, 그 일을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인간들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바벨탑을 쌓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도, 공동선도 없고, 이기심과 탐욕만으로 하는 일들은 ‘선한 노동’이 아니라 ‘죄’입니다>
2)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라는 나자렛 사람들의 말과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라는 말은, 나자렛 사람들이 “목수는 목수 일이나 할 것이지 어찌 감히 우리를 가르치려고 하는가?” 라는 반응을 보였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육체노동을 천시했고, 목수의 아들이며 목수라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진짜로 천한 사람은 특정 직업을 천시하고 업신여기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농부’로 표현하셨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한 15,1-2).” 하느님을 ‘농부’로(노동자로) 표현하신 것은, 노동의 신성함을 나타냅니다. 그러니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3) 하느님이 농부시라면, 하느님의 인류 구원사업은 농사를 짓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심판’을 ‘추수’로 표현하고, ‘구원받는 것’을 ‘열매 맺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도 다 하느님의 농사에 연결됩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5-6).”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농사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추수의 기쁨은, 농부이며 노동자이신 하느님의 기쁨이기도 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4)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을 행복하다고 합니다(야고 5,7-8.10-11ㄱ).” 신앙생활은, 추수 때의 기쁨만을 생각하면서 여름 동안 논과 밭에서 묵묵히 고생하는 농부의 생활과 많이 비슷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노동자 성 요셉 기념미사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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