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목요일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 오늘은 저녁이 되어서야 복음 묵상을 마쳤습니다. 무척 더운 하루였습니다. 이 더위 한가운데서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라 설레면서도 긴장됐습니다. “내가 아이들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혹시 지루해하지 않을까?” 많은 염려 속에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분명 나와 다른 듯했습니다. 친절하게 다가가려 해도 아이들의 관심은 친구들과의 대화, SNS, 또는 다른 생각들에 있었습니다. 상호 교감이 있었던 순간은 솔직히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이 좋았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아이들도 그랬을까요?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말이 과연 마음에 닿을까요? 아이들은 지금, 친구와 노는 것이 더 중요하고, 무리에서 소외될까 걱정하며, SNS 좋아요 수로 존재를 확인하고, 늘 비교하고, 조마조마하고, 조용히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복음의 초대가 귓등에라도 닿을까,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복음을 묵상하고,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며 잠시 쉬는 사이 내 안에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가 그들과 함께 있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너는 그 아이들 안에 있는 두려움을 느꼈니? 친구와 멀어질까 걱정하고, 좋아요가 없으면 사라질 것 같은 그 마음을? 그걸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너는 애쓰지 않아도 돼. 사랑이 이미 네 안에 있으니까. 너는 그냥 거기에 있으면 돼. 내가 할 거니까.” “고맙다. 이 더운 날, 나 대신 아이들과 함께 있어줘서. 너의 존재로 말없이 나를 전해줘서.”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가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존재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또 나를 평가하고 있었구나. “오늘 내가 잘했는가”를 기준으로,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했구나.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삶. 그건 여전히 내 뿌리 깊은 습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그 습관을 부드럽게 녹여주셨습니다. “괜찮다, 그냥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로. 
오늘 청소년들과 프로그램을 하면서, 산과, 신생아실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여러 친구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기와 엄마와의 사랑의 교감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어요. 아이가 아직 언어나 사고력이 발달하기도 전에, 엄마의 존재와 품, 손길과 눈빛 안에서 사랑을 '몸으로' 배워갑니다. ‘이게 사랑이야’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는 매 순간 사랑을 느끼며 받아들이고 성장하죠. 아기는 자라면서 이 시기의 엄마를 뚜렷이 기억하지 못할 수 있지만, 엄마의 돌봄은 아이 안에 ‘기억’이 아니라 정서적 뿌리, 안전감, 세상을 신뢰하는 힘으로 남습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흔적 없이 스며들기 때문이겠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엄마와 아이 사이에 흐르는 존재적 사랑, 그 깊은 유대의 신비를 시로 표현해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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