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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서로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간곡하게 호소하십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5-22 조회수31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17).”

1)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계명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6-18).”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곧 형제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것이 사도 요한의 설명입니다.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떻게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은가?”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먹는 일’은 ‘생존’에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는 말은, 먹고 남은 음식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함께’ 먹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먼저 배불리 먹고 나서, 조금 남은 음식을

배고픈 사람에게 주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부자 자신은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면서, 굶주리고 있는 라자로에게

빵 부스러기를 몇 개씩 던져준 일은,

결코 나눔도 아니고 사랑도 아닙니다(루카 16,19-21).

똑같이 나누어서 함께 먹어야 합니다.

‘배부름’을 나누는 것은 ‘배고픔’을 나누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2)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1-4)”

가난한 과부가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헌금함에 다

넣은 것은, 자기 목숨을 내놓은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 헌금이 불우이웃돕기에 사용되었다면, 그 과부는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한 셈이 되고,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 비용으로 사용되었다면,

온 마음과 목숨을 바쳐서 하느님을 사랑한 셈이 됩니다.

<수혈을 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기꺼이 ‘헌혈’을

하는 것도 ‘자기 목숨을 내놓는 사랑 실천’입니다.

헌혈 한 번 한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지만,

피를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3)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는, “사랑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입니다.

여기서 ‘친구’는, ‘구원받은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이 아니고, 믿음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0-21).”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아무 관심도 없고, 그래서 이웃 사랑

실천도 전혀 하지 않고, 혼자서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죽어서 내세에 가 보니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자기 혼자만 있다면, 그곳이 천국일 수는 없습니다.

4) 17절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종합해서 한 번 더 강조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것이, 하라고 명령하신다고 하게 되는 것일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만일에, 하기 싫은데도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기서 ‘명령’은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명령이

아니라, ‘호소’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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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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