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16 조회수239 추천수6 반대(0)

며칠 전 집 축성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 축성은 조금 색달랐습니다. 보통은 가족 모두가 신앙을 가진 경우에 집 축성을 청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형제님이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님은 저와 함께 방문한 교우들을 따뜻하게 환대해 주셨습니다. 직접 담근 막걸리까지 내어주시며 기쁘게 맞아주셨습니다. 비록 아직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성당에 나가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시카고에 살던 시절에는 주일 주차 봉사까지 했다고 하셨습니다. 현재는 직장 사정으로 주말에 근무하고 있지만, 여건이 허락된다면 성당에 다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일이 10월이라고 하시기에 시몬이나 마태오라는 세례명을 추천해 드렸습니다. 아내는 마태오가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날 식사 자리에서 마태오 형제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님도 원장님보다는 마태오라는 이름이 훨씬 마음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집 축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성수 예식에도 마음을 다해 함께한 형제님은 이미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계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세례를 받았고, 심지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되었음에도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교우들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사는 모습도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기도하지 않고, 거친 말로 상처를 주는 신앙인도 있습니다. 본당 신부라는 권위에만 기대어, 보좌 신부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주는 사제도 있습니다. 수도자이면서도 세상의 향기에는 민감하면서 정작 그리스도의 향기는 희미한 모습도 있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좌우명이었던 사명대사의 시를 기억합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면,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말라. 오늘 네가 걷는 그 길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순교를 통해 사제들에게 믿음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지칠 줄 모르는 발걸음으로 사제직의 헌신과 열정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103위 성인들과 124위 복자들, 그리고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수많은 순교자는 우리 모두의 신앙 여정에 등불이요,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습니다.

 

천주교의 사대교리에는 네 가지 핵심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天主存在), 둘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분이시라는 것(三位一體), 셋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降生救贖), 넷째, 선한 이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이에게는 벌을 주신다는 것(賞善罰惡)입니다. 성서는 이 사대교리를 삶 속에서 증명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았던 노아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습니다. 믿음을 지켰던 아브라함은 늦은 나이에 아들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신앙을 잃지 않았던 욥은 다시 건강과 복을 누렸습니다. 반대로, 교만했던 아담은 낙원에서 쫓겨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바벨탑은 무너졌으며, 탐욕에 눈이 먼 아합왕은 결국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의 역사는 선한 이에게 상을, 악한 이에게 벌을 내리시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깊은 차원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자해지, 사필귀정, 인과응보같은 인간 사회의 원칙을 뛰어넘는 새로운 질서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실 분이지만, 오히려 섬기러 오셨고,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에게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참아내며, 복수보다는 용서를 선택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세상과 다른 새로운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거기에서 참된 하느님 나라가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이정표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태오 형제님처럼 아직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가 따뜻한 이정표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곧 믿음과 말과 지식과 온갖 열성에서, 또 우리가 여러분에게 베푼 사랑에서도 뛰어나므로, 이 은혜로운 일에서도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