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 5,39)
오늘 복음 말씀은
내가 세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어떻게 악인에게 맞서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가 하는 악행이
얼마나 큰 고통을 야기하는지 뻔히 보면서도
어떻게 맞서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묵상하다 보니,
제가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 이 말씀을 불의를 보고 참으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헬라어 성경 원문 'τῷ πονηρῷ (tō ponērō)' 을 살펴보니,
악인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라기 보다
자신의 불완전함과 불안을 감추려 애쓰고,
자신의 약함을 덮기 위해 힘을 과시하려는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
"관계가 깨어지고 균형이 잃은 상태에 놓인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힘을 과시할 때,
타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때로는 폭력적인 태도로 상대를 억누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불편함이 생기지만
오늘 복음은 '반응하지 말라, 맞서 싸우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 나는 나의 옳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하느님 안에서 안전하다."
이 진리를 알기에
참된 영혼은 악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악을 '마주하지 말라' 가 아니라
악과 같은 차원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악에 굴복하거나 악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울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존재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으니,
불필요한 싸움에 나를 끌어들이지 말라."
마음 한 켠이 단단해집니다.
내가 싸울 상대는 악한 사람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것을.
그 두려움을 내려놓고,
온전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