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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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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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4:57 | 조회수34 | 추천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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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파스카(Pascha)'라는 말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는 '페사크(פֶּסַח)'라 하며, '넘어간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이집트 탈출을 앞두고, 하느님께서 히브리인들의 집은 넘어가시고 이집트의 장자들을 치신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그 피를 통해 죽음이 넘어갔습니다. 그날 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탈출했고, 파스카는 그 구원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누룩 없는 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이 긴박했기 때문입니다. 그 파스카의 완성이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말씀하시며, 성목요일 밤, 빵을 들어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잔을 들어 “이는 너희를 위한 내 피다.”라고 하시며 새 계약을 세우셨습니다. 구약의 파스카가 '죽음을 넘어가는 해방의 사건'이었다면, 신약의 파스카는 '죄와 죽음을 넘어가는 영원한 생명의 은총'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체 성혈 대축일은 바로 이 신약의 파스카를 새롭게 기억하는 날입니다. 미사 때 우리는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성체를 모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성찬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신학교 시절, 교구장님이나 교황 대사가 방문하셨을 때면 신학생들은 특별한 노래로 환영했습니다. 그 노래는 바로 ‘임 쓰신 가시관’이었습니다. '임 쓰신 가시관'은 1985년 신학생들로 이루어진 '낙산 중창단'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비공식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이 앨범은 당시 젊은 신학생들의 열정과 신앙을 담아낸 노래로, 이후 '임 쓰신 가시관'은 생활 성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낙산 중창단에 함께 했던 신학생들이 40년을 기념하며 지난 5월 도림동 성당에서 중년의 사제가 되어서 당시의 열정을 기억하며 공연했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임은 전 생애가 마냥 슬펐기에/ 임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다/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 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고자 하는 순결한 의지가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성체 성혈’의 신비가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체 안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임 쓰신 가시관의 고통까지도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을 우리는 매 미사 때 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성가가 있습니다. 성지 순례 길 위에서, 지친 발걸음을 딛으며 부르던 ‘순교자 찬가’입니다. 이 곡은 최민순 신부님이 작사하고, 이문근 신부님이 작곡하였습니다. 한국 가톨릭 순교자들의 신앙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성가는 9월 순교자 성월이나 특별한 전례 때 자주 불리며,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곡입니다.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높으신 영광에 불타는 넋이여/ 무궁화 머리마다 영롱한 순교자여/ 승리에 빛난 보람 우리게 주옵소서” 순교자들은 피를 흘려 믿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의 피는 성혈의 거울이며, 그들의 헌신은 성체를 모시는 우리의 자세를 비춰주는 반사경과도 같습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진정한 실존은 고통을 통과한 사람 안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체는 바로 그 고통을 통과한 예수님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그 실존을 먹고, 그 피를 마십니다. 마치 순교자들이 육체를 벗어 던지며 영원을 증언했던 것처럼, 우리도 성체를 통해 이 세상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것은 단순한 의식의 반복이 아닙니다. 성체성사는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셨을 때, 모두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 ‘풍요’는 인간의 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은총의 기적입니다. 성체는 단지 한 조각의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살아 있는 빵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 모시는 성체는 단순한 빵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시관을 쓰신 임의 고통이며, 순교자들이 흘린 피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무릅니다. 성체를 통해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고, 우리 삶 안에서 실천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들 또한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깊은 사랑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파스카를 기억하며, 매일의 삶 속에서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닮고자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도 주님 안에 머물겠다고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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