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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여정 “걱정하지 마라”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21 조회수8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5.6.21.토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1568-1591) 기념일 

 

 

2코린12,1-10 마태6,24-34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여정

“걱정하지 마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시편34,8)

 

삶은 기적의 선물이자 발견이요 선택입니다. 기쁨도 행복도 감사도 선물이자 발견이요 선택입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 보아라.”,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아라.” 믿음의 눈이, 영의 눈이 활짝 열려 하느님의 진리를 발견한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관상가이자 신비가요 영성가입니다. 다음 고백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조용한 분위기중에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 레오 교황입니다. 새벽 홈페이를 열자 한눈에 들어오는 교황님의 세 대목 말씀입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박해받는 이들을 기억하라!”

“그렇게 많은 무죄한 생명들이 전쟁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주제로 한 강론 한 대목입니다.

“신자들이 되기 전, 우리는 사람이 되도록 불림받았다!”

(Before being belivers, we are called to be human)

새삼 세상의 고통에 열려있어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믿음이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혼자가 아닌 세상에 몸담고 살아가는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옛 현자의 말씀도 우리의 공부에 분발을 촉구합니다. 

“먼저 목표에 도달한 사람과 나란히 서라. 그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다산>

“순임금의 모범에 비해 나는 아직도 시골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근심이 깊으니 어찌해야 할까? 그저 순과 같이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소학>

예수님은 물론 성인들을 우리 삶의 모델로 삼으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답은 노력뿐입니다. 예수님처럼, 성인들처럼 되려고, 살려고 분투의 노력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갑싼 믿음도, 값싼 사랑도, 값싼 은총도 없습니다. 노력하는 믿음이요 노력하는 사랑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최선의 노력과 더불어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오늘은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그의 헌신적인 짧은 생애가 깊은 감동을 줍니다. 1568년 이탈리아 카스틸리오네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적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귀족으로서 누릴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련놓고 1584년 예수회에 입회합니다. 예수회의 연학수사로 신학을 공부하던중 로마에 흑사병이 유행하자, 감염된 환자들을 돌보며 봉사활동에 헌신하다 흑사병에 감염되어 1591년 23세 꽃다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헌신적인 믿음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1726년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해 시성되며, 가톨릭교회에서 청소년, 신학생, 예수회 연학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새삼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의 ‘삶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에 철저했는가?’의 ‘삶의 질’이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주는 성인들입니다.

 

요즘 마태복음은 산상설교의 계속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소금으로 살 수 있는 구체적 지침들이 계속 주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설교가 참 감동적입니다. 우리의 부족한 믿음에 참 좋은 각성이 됩니다. 삶에 중심은 둘일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수는 없으니 하느님을 선택해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살라는 촉구입니다.

 

주님은 구체적으로 하늘의 새들과 들에 핀 나리꽃들의 자연의 실례를 들면서, 이들보다 비교할바 없이 귀한 우리 존재들임을 확인시키며, ‘걱정하지 마라’며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각성시킵니다. 결론 역시 ‘걱정하지 마라’도 귀결됩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결국은 믿음이 답입니다. 믿음이 약하고 부족하기에 파생되는 온갖 두려움, 불안. 걱정들입니다. 오늘 결론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다시 강조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내일도 내 영역이 아닌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하느님은 회개한 이들의 과거는 불문에 붙이십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행복의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못 살면 내일도 못삽니다. 삶은, 행복은 선택입니다. 물론 근검절약의 정신으로, 유비무환의 지혜로 앞날을 준비하면서 하루하루 오늘 하늘나라의 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오늘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삽니다. 그러니 내일해도 될 걱정을 앞당겨 걱정하는 것은 참 어리석습니다.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감사하며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 때 언젠가의 행복한 선종입니다. 이런 종말론적 삶의 모범이, 믿음의 모범이 바오로사도입니다. 참 깊은 믿음을 통해 자신의 고통의 신비를, 의미를 깨닫는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나에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이요 신자무적(信者無敵)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든 매사 모두를 그리스도의 힘이 드러나는 믿음의 계기로 삼을 때 백절불굴의 한결같은 삶에, 주님과의 일치도 날로 깊어질 것이며 이 믿음의 사람을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도와주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게 몸을 맡기는 사람.“(시편34,9).”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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