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우리는 성체성사를 ‘살아야’ 합니다.> | |||
---|---|---|---|---|
작성자최원석
![]() ![]() |
작성일2025-06-22 | 조회수108 | 추천수2 |
반대(0)
![]() |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루카 9,11ㄴ-17).”
1) 하느님과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에도 땅에도 이른바 신들이 있다 하지만 ― 과연 신도 많고 주님도 많습니다만 ―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1코린 8,5-6).”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이 말을 반대로 표현하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거두어들이시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력을 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살아갈 힘을 잃는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주시는 생명력을 ‘받아먹는’ 성사가 성체성사입니다. ‘성체성혈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일을 기념하고 성체성사를 묵상하는 날이고, 성체성사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살아야 한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성체성사는 ‘지식’이 아니라 ‘삶’이고, ‘이론’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5-57).” 그리고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나를 먹는 사람은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체성사에서 구체적으로, 또 실제적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상징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일이고, 영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일이고, 천상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지상적인 일입니다.
3) 예수님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로 오신, 하느님이신 분”이고(요한 1,14),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신 분”입니다(콜로 1,15).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모습’이신 분입니다.> 하느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들 가운데로 오신 일도 ‘사랑’이고, 당신의 살과 피를 성체와 성혈로 변화시켜서 우리에게 주시는 일도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은 사실상 ‘같은 일’인데, 하나로 합해서 말하면, “하느님이신 분이 당신 자신을 빵과 포도주로 변화시켜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다.”입니다. 그 일이 곧 성체성사입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먹는 것은 하느님이신 분의 사랑과 생명력을 ‘실제로’ 받아먹는 일입니다.
4) 믿음 없는 사람들이 천주교 교리들 가운데에서 가장 믿지 못하는 교리가 성체성사인데,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믿게 만들 방법도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믿으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0-32)”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일과 마음이 타올랐던 일을 ‘증명’할 수는 없었지만, ‘증언’했습니다(루카 24,35).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