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복음의 다리가 되어 주님 말씀을 전하는 사도로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전야 미사[06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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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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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22 | 조회수88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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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즈카르야 사제가 분향하는데,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에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아론의 자손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 큰 인물이 되기에 그렇다.”’ 요한은 사제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친척 엘리사벳 사이서 태어났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는 주님에 앞서 그분의 길을 닦고 구약과 신약을 잇는 위대한 예언자다. 요한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라고 고백한 이었다. ‘말씀’이신 주님의 길을 준비한, ‘광야의 소리’였다. 왜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게 진작에 아들을 주지 않으셨을까? 그것은 그들이 나이가 많았을 때 비로소 아들을 주신 것은 아들 요한이 자신들의 힘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의 천사로부터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예고받자 즈카르야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뜻을 실행하려 하는 이도 두려움을 느낄 게다. 그 두려움이 불신으로 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만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지는 많은 짐은 우리를 불신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기도 할게다. 아무튼 그렇게 얻은 아들은 더 이상 자기들의 소유가 아님을 그들은 잘 알고 있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아론 집안의 전통에 따라 사제가 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광야에 나가 예언자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은 그분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한 준비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그것이 자신의 소명이요 존재 이유라고 스스로 밝혔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을 예수님 이전의 마지막 예언자로 칭한다. 그는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였다. 자신의 온 생애를 자신을 위한 길이 아닌 예수님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서 걸었다. 그렇게 그는 예수님을 위한 준비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의 선포와 삶 그리고 죽음까지 모두 예수님을 위한 준비의 과정이었다. 요한의 삶은 그러하였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려는 삶보다, 예수님이라는 주인공을 위해 자신은 철저하게 조연으로 살아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서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아울러 자신만이 바로 내 삶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라고 가르친다. 세상의 흐름은 내가 누군가를 위한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어야 성공한 삶이라고 알려 주니까. 이 시대의 눈으로 보면 요한의 삶은 어떻게 보일까? 그의 삶은 실패요 피지 못한 꽃이며 그의 죽음은 허무였다.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서 인생의 필연적인 운명을 믿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 생각과 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와 우리 인생을 바꾸고자 하신다. 문제는 하느님 섭리의 표징을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과연 내가 갖고 있느냐는 것이리라. 세례자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이어 주는 다리였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복음의 다리가 되어 주님 업적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야 하겠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전야 미사[0623](루카 1,5-1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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