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 26일 _ 김건태 루카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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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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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6-26 | 조회수50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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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의 집 오늘 우리는, 마태오 복음저자가 그리스도인 삶의 헌장으로 자리한 예수님의 고귀한 가르침들을 모아 놓은 산상설교라는 대단원의 마지막 말씀을 듣습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군중은 몹시 놀랐다” 하는 반응을 전합니다. 이어서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라고 부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위 위에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복음에서 우리는 들음과 실천에 옮김이라는 주제를 자주 접합니다. 들음, 곧 해야 할 일을 아는 것과, 그렇게 안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삶이 곧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자신감을 잃고 망설이거나 헤매는 삶, 보람과 거리가 먼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ㅎ애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 어떠하고, 살아가는 방법이 어떠하든,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결심의 연속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 결심이 깊은 기도를 통해 찾아낸, 다시 말해서 주님의 뜻에 맞는 숙고의 결실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이 결심이 숙고의 결과라 하더라도, 결심한 바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면, 이 또한 모래 위에서 만족하는 삶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실은 바로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교인 실존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숨어 있습니다. 결심의 내용은 꽤 괜찮아 보이는데, 분명 남들이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결심인 것 같은데, 더 나아가지 못하고 결심 그 자체로 머무는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은 살아온 삶까지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결심했다고 해서 바로 실천에 옮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한 번 더 숙고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결심이라도,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대로,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악표양이 되는 것은 아닌지 꼭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런 결심이라면 포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또 다른 위대한 행위임을 사도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찾아 결심하고 이 결심을 실천에 옮기는 가운데, 비록 더디지만 분명히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는, 보람 있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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