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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신부님_민원을 귀찮은 일로 생각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26 조회수88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재명 대통령께서 국무회의에 배석한 국무위원들에게 하신 말씀이 제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수많은 민원들이 각 부처로 올라옵니다. 민원을 귀찮은 일로 생각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다. 민원들 가운데 정당한 민원은 가급적 뒤로 미루지 말고 즉각 즉각 해결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주십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민원에 대해서는 책임자들이 직접 당사자들과 직접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 공동체도 귀담아 듣고 반성하고 성찰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저도 작은 공동체와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민원을 자주 접수합니다. 돌아보니 민원에 대해서 귀찮아 하는 경향이 있었고, 때로 무시하고, 때로 자꾸 뒤로 미루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정당한 민원은 미루지 말고 즉각즉각 대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온 종일 바빴습니다. 진입로 도로를 보수했습니다. 204호 전구를 교체했습니다. 변색된 변기도 교체하고, 문짝도 수리했습니다.

오늘 주님 권고 말씀이 유난히 제 가슴을 찌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해서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거룩하고 선한 의지가 머리와 가슴에만 머무르지 않고, 발까지 내려오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조금이라도 실행하는 사람이 되자며 나름 발버둥 쳐야 하겠습니다.

호주머니에 쏙 들어갈 작은 노트 하나와 볼펜을 늘 지니고 다니다가, 그때그때 떠오르는 꼭 처리해야 할 일들, 미리미리 대처해야 할 일들, 읍내 나가면 잊지 말고 사와야 할 물품들을 열심히 적습니다. 실행한 사항은 하나하나 지워 나갑니다.

그러나 좀 더 노력할 측면이 있는 듯 합니다. 결심이나 과제들이 꼭 외적인 것들, 일과 관련된 것들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측면으로 넘어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눈여겨볼 인물이 있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3대 총장 필립보 리날디 신부님(1856~1931)입니다.

그는 연초가 된다든지 연례 피정 끝에는 반드시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수립하고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서원이나 서품, 피정 등 영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결심에 또 결심을 계속했습니다.

1889년 필립보 리날디 신부가 스페인 원장으로 발령나자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청소년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겠습니다. 더 자주 그들과 대화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더 자주 그들 가운데 머물겠습니다.

관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필립보 리날디 신부는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더 겸손해지고, 더 친절해지고, 더 신중해지고, 더 자애로워지겠습니다. 더 이상 거친 태도를 보이지 않겠습니다. 지치거나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이런 계속된 결심들이 그를 더 따뜻한 사람, 더 성숙한 사람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2025년 6월 26일 연중 제12주간 목요일_조명연 신부님

 

 

유다인을 자그마치 43만 7천 명을 학살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잘 알 것입니다. 나치 독일 패망 이후 도망자로 살다가 1961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기소되었습니다. 그가 직접 계획하고 명령해서 수많은 사람의 학살이 이루어졌지만, 그는 끝까지 “어떠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정신이 이상한 것일까요? 어떻게 그런 끔찍한 학살을 계획하고 명령했으면서도 전혀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진단했습니다. 그 결과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고, 그중 한 명은 “내 상태보다도 정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상이면서도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합니다. 악이 평범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스스로 악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는 학살이 아니라 최종 해결책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법률을 준수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자기 행위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았고, 또 상대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평범한 우리도 가능합니다. 자기 행위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경우가 참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더 나은 방법이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이런 식으라면 자기도 모르게 끔찍한 악으로 향하게 됩니다.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이웃 사랑을 강조하신 주님 안에 늘 머물러야 합니다. 이렇게 머물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주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산상 설교의 마지막 부분으로 말씀을 듣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진정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즉,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라고 말씀하시지요. 외적인 신앙 고백이나 감정적인 열정만으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것만이 구원의 기준이 된다고 하십니다.

 

참된 신앙이라는 무엇일까요? 주님 말씀대로, ‘입으로 주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삶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행위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깨닫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사랑의 실천에 적극적인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만이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오늘의 명언: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앤디 그로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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