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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어머니의 심정은 곧 하느님의 심정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6-28 조회수70 추천수0 반대(0) 신고

<어머니의 심정은 곧 하느님의 심정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41-52).”

1)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라는 성모님의 말씀은,

‘성모 성심’이 무엇인지를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 나를’ 그렇게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그 애타는 심정이 곧 성모 성심입니다.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인간들이 구원의 길에서 탈락하지 않고

모두 무사히 구원을 받는 것.

그것 하나만을 바라시는 성모님의 마음을(심정을)

표현한 말이 곧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나는 길을 잃은 적 없다.

나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그러니 성모님께서 나를

애타게 찾으실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은, 바리사이들 같은 위선자들이

“나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이다.” 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진짜 성인 성녀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회개하는데,

위선자들은 “나는 잘하고 있다.” 라고 큰소리치기만 합니다.>

2) 마태오복음에 어린 자식이 죽어서(살해당해서) 통곡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나타내는 예언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마태 2,16-18)”

여기에 인용되어 있는 예언은 예레미야서 31장 15절입니다.

원래 이 예언은,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게 패망해서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의 상황에 대한 예언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붙잡혀서 끌려가는 자식들 때문에

비통해 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나타낸 예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죄 속에서 살면서 멸망에 이를 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있는 자식들을 보는 비통한 심정을 나타낸 예언입니다.

그렇다면 마태오복음서 저자가 이 예언을 복음서에 인용한

의도에는 헤로데 같은 죄인들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어머니께서 나를 애타게 찾으시는 것은,

내가 무사히 구원받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어머니의 심정은 곧 하느님의 심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정은 곧 어머니의 심정’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에제키엘서에 있는 다음 말씀은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즉 모든 사람이

회개해서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

돌아서라. 너희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에제 33,11)”

이 말씀은, 인간들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에 대한

하느님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의 심정도 같습니다.

작은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렇게 지시합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22-24).”

또 큰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루카 15,32).”

이 말들은 모두 작은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큰 기쁨’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 ‘큰 기쁨’은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는 ‘큰 슬픔’에

빠져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의 슬픔과 기쁨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사랑에는 사랑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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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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