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하느님의 꿈과 실현 “하느님을 꿈꾸며 하늘 나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07 조회수7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5.7.7.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창세28,10-22ㄱ 마태9,18-26

 

 

하느님의 꿈과 실현

“하느님을 꿈꾸며 하늘 나라를 삽시다”

 

 

아마 저만큼 꿈을 많이 꾸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꿈입니다. 수도사제가된이후 지금까지 36년 동안 거의 밤마다 꾼 꿈이 강론꿈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꿈이라 믿습니다. 꿈속에서 완성된 강론이었는데 깨고 보면 꿈인 경우는 얼마나 많았는지요! 강론을 꿈꾸며 살아 계신 하느님과 생명과 사랑의 소통이 이뤄졌음을 믿습니다. 세상이 하느님의 꿈이 펼쳐지는 무대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처럼, 꽃처럼 폈다 사라졌는지요! 

 

그러나 예나 이제나 언제나 하느님은 여전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통해 꿈꾸시며 꿈을 실현시켜 가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자 아름다움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꿈이 아름다움으로 실현되어 표현된 아름다운 사람들이요 자연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꿈을 소재로 한 시도 강론도 꽤 많은 편입니다. 몇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비오는 어둔 아침

 빨갛게 환히 피어난 장미꽃들

 꼭 꿈같다

 꿈으로 피어난 꽃인가

 꿈도 현실이네

 빛나는 꿈있어 아름다운 현실이다”<꿈;2000.6.27.>

 

“당신께 맺혀 있는 

 이슬방울되어

 영롱하게 꿈처럼 깨어 살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인생이고 싶다”<이슬방울;2000.8.6.>

 

“풀잎들 밤새 

 별꿈꾸며 잠못 이루더니

 아침 풀잎마다 맺힌

 영롱한 별무리 이슬방울들”<별꿈;2000.10.1.>

 

꿈꾸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꿈의 현실화입니다. 진정 꿈꾸는 사람은 깨어있는 건강한 사람이요 진짜 꿈꾸는 이상주의자가 진짜 현실주의자입니다. 늘 새벽같은 삶을 꿈꾸며 썼던 ‘새벽’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마음의 중심

 늘 고요히 깨어 있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곧 집중 몰두하되 휘말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새벽의 고요와 평온을 산다”(새벽;2000.9.11.>

 

오늘 옛 현자의 말씀도 하느님의 꿈이 현실화된 성인들의 모습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지만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사람, 일상의 삶에서 품격을 갖춘 어른의 모습이다.”<다산>

“‘곧고 반듯하고 위대해서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말은 곧 그 행하는 바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주역>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눈만 열리면 언제 어디나 하느님을 꿈꾸는, 하느님을 만나는 ‘하늘의 문’이 ‘하느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성인들, 그 이전 모든 성서의 위인들 예외없이 하느님을 꿈꾸는 사람들이자 하느님의 꿈이 실현된 분들이었습니다. 

 

요셉이 꿈쟁이 였듯이 오늘 창세기 그의 아버지 야곱 역시 하느님을 꿈꾸는 사람, 꿈쟁이였습니다. 그처럼 삶이 치열하고 절박하고 고단했음을 뜻합니다. 가난한 이들이 꿈까지 잃으면 안됩니다. 재산을 잃어도 꿈을 잃어선 안됩니다. 오늘 창세기에서는 야곱이 형 에사우를 피해 하란으로 도주하던중 베텔에서 꿈을 꾸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가 꿈을 꾸는데 땅의 층계가 하늘에 닿아있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고 있는 장면과 더불어 나타나신 주님께서 야곱과 소통합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이어지는 축복의 약속이 어마어마합니다. 마지막 약속이 절정입니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다시 이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참으로 야곱이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온갖 고통과 시련을 항구히 견뎌낼 수 있게 한 원인도 바로 이런 주님과의 내밀한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음을 봅니다. 야곱의 감격에 벅찬 깨달음의 고백입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진정 하느님을 꿈꾸는 자에게는 그가 몸담고 있는 거기 그 자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하느님의 집이자 하늘의 문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야곱은 돌베개를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붓고 그곳의 이름을 베텔(하느님의 집)이라 명명합니다. 야곱을 통해 하느님의 꿈이 실현됨을 봅니다.

 

오늘 복음 역시 하느님의 하늘나라의 꿈, 인류구원의 꿈이 예수님을 통해 실현됨을 봅니다. 하느님의 꿈의 실현에 앞서 요구되는바 간절하고 항구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꿈이 완전히 실현된 하늘나라 자체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어 온전히 치유 구원되는 두 경우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을 만나 믿음 좋은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치유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회당장의 믿음에 화답하신 예수님은 그의 죽은 딸을 살리심으로 역시 하느님의 꿈을 실현시킵니다.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예수님게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소녀는 일어나니 그대로 주님을 만나 부활한 것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과 창세기 말씀은 우리를 향해 묻습니다. 과연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꿈꾸며 하느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무엇보다 역설적으로 첨단문명의 야만시대, 꿈을 잃는, 믿음을 잃은 이 세대가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도 인공지능도 챗gpt도 아니요, 하느님의 꿈의 회복이요 꿈의 현실화입니다. 레오 교황님의 말씀도 예언적이요 하느님을 꿈꾸고 실현시키며 살 것을 고무합니다. 

 

“진리가 없는 문화는 권력자들의 도구가 된다.”

(Culture without truth becomes a tool of the powerful)

“우리는 모두 순례자들이고 우리는 언제나 순례자들이다.”

(We are all pilgrims and we are always pilgrims)

“교황의 7월 기도지향; ‘분별안에서의 양성’”

(For formation in discernment)

 

진짜 하느님을 꿈꾸며 꿈의 실현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진리의 사람이자 분별의 지혜로운 사람이요 늘 순례자로 사는 무욕의 자유인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을 꿈꾸며 하늘 나라를 사는데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의 꿈을 현실화하는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