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의 인내는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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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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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7-11 | 조회수31 | 추천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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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마태 10,16-23).”
1) 신앙인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리 떼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양들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잠재적인 예비신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리 떼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양들’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라는 말씀은, 이리 떼를 양들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은, 즉 신앙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신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적대감을 품고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하는 태도로 선교활동을 한다면, 가는 곳마다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물리치십시오. 알다시피 그것은 싸움을 일으킬 뿐입니다. 주님의 종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잘 가르치며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반대자들을 온유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회개시키시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실 수도 있습니다. 또 악마에게 붙잡혀 그의 뜻을 따르던 그들이 정신을 차려 악마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2티모 2,23-26).”
3)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1-12).” 이리 떼를 양들로 변화시키는 일은, ‘말’보다 먼저 ‘삶’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사는 것 자체가 ‘신앙의 증언’입니다. 만일에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서 말로만 신앙을 증언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증언’이 아니라 ‘위선’입니다.
4) “증언할 것이다.”는, 뜻으로는 “증언하여라.”입니다. <“박해를 증언의 기회로 삼아라.” 라는 명령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증언만을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라,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뒤의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이 말씀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뜻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든지 간에, 죽음은 끝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5)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라는 말씀은, ‘온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려고 노력하면 성령께서 도와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성령께서 우리 대신 증언하신다는 말씀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박해 때에 자동적으로 성령께서 개입하셔서 증언을 해 주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신앙을 증언하는 사람만이 성령의(주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합니다. <안 도와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주시는 도움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6)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라는 말씀은 ‘뱀처럼 슬기롭게’ 처신하라는 말씀에 포함됩니다. 박해를 피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도망가라는 뜻이 아니라, 어디서든 어떻게든 신앙생활을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순교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닙니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종말과 재림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마지막 승리는 박해자들 쪽이 아니라 예수님 쪽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박해를 끝까지(죽을 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은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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