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머니의 기도...[1] 중환자실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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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재경 | 작성일2001-04-02 | 조회수2,35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안녕하세요? 주님의 평화가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저는 당산동 본당 이재경 세자요한 입니다.
저는 작년 가을 정확히, 2000년 11월 16일에 위암수술을 받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모두 놀랐지만, 곧 어머님과 저를 중심으로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지금은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으며, 지난 가을에 제게 생긴일을 체험수기로 옮겨 보았습니다.
첨부 파일과 같이, 제목은 ’어머니의 기도’로 명칭하고, 8편으로 기록했는데, 마지막에 ’나의 신앙 고백’을 추가로 완결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에 대하여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가 될 듯하여, 허락도 없이 이곳 게시판에 올립니다.
저는 2001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까지의 경과는 매우 좋습니다.^^ 여러분께 저의 체험수기가 유익하시길 바랍니다.
세상 곳곳에서 기도나 선행으로 통공하시는 여러분께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길 바라며... 당산동 본당에서 이재경 세자요한 올림.
[체험수기] 어머니의 기도
[1]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다. 실내는 조용했다. 창으로 햇살이 들지 않고, 침대 위에 조명등 몇개가 은은하게 빛난다. 일어나 앉으려다, 배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통증 때문에 바로 포기했다.
’으음, 수술이 끝난건가?’
이동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갔었다. 커튼이 드리운 출입문 한켠에서 주사를 맞았고, 잠시후에 수술대로 옮겨 갔다. "비행접시 같아요." 수술대 상단의 조명을 보고, 한마디 했다. "처음이신 가요?" "네." "집이 어딘데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형제가 있나요?" "남동생 하나 닭띠, 여동생 하나 소ㄸ..." 더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이 아침이야? 저녁이야?’ 주위를 돌아보려 하는데, 고개는 돌아가지 않고, 다시 한 줄기 통증이 배꼽에서 명치로 살을 가른다. "으으.." 신음소리를 내며, 잠깐 마음을 진정시켰다.
누운채로 눈동자를 굴려가며, 내 모습을 살펴 보았다. 코에 팔에 인조인간처럼 여기저기 링겔관이 꽂혔다. 오른쪽 옆구리에도 뭐가 있는 듯, 만지려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실험실에 표본된 개구리처럼 침대에 붙어 있었다.
다만, 2, 3분 주기로 반복되는 통증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거했다. ’아, 살아서 다행이다.’ 죽었을 경우, 화장터에서 울부짖고 계실 부모님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눈을 감는다. 하지만, 잠들지는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또각이는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떴다. 간호사의 머리가 보인다. 멀찌감치에서 왔다갔다 부산히 움직이는데, 말소리도 들린다. ’이 방에 환자들이 더 있나 보다.’ 간호사는 순서대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내게로 왔다.
"일찍 일어나셨네. 잘 주무셨어요?" "으." 신기하게도 ’네’라는 대답이 입밖에 나오는 순간, 어느새 "으"로 바뀐다. 간호사는 체온계를 꽂아 놓고, 잠시 나가더니 수건을 들고 왔다. "아침에 가족들 첫 면회가 있으니까, 예쁘게 보여야죠?" 얼굴을 닦는다. "..." "체온은 몇 돈가? 정상이네요." "..." "빨리 회복되려면 운동을 해야되요. 이렇게..." 간호사가 갑자기 내 어깨와 등을 받쳐들며, 90도 옆으로 홱 돌렸다. "으윽..." 아프다. 오장육부가 제자릴 못잡고, 몸속에서 이리저리 뭉쳐다닌다. "통증을 느낄수록 치유가 빨라요. 운동하세요" 다시 돌려 누이고는, 간호사가 갔다.
’음, 운동을 해볼까?’ 아무리 힘을 줘도, 돌덩이가 가슴위에 얹힌 듯, 몸이 꼼짝하지 않는다. 다시 눈을 감았다. 역시 잠들지는 못했다.
수십분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실내가 떠들썩하다. ’면회시간인가?’ 눈을 떴다. 가족들이 왔다. "괜찮냐?" "으" ’네’하고 대답했다. "다행이다." "으으 으으으으?" ’밤새 계셨어요?’하고 여쭈었는데, "많이 아픈 모양이다." 어머님이 말씀하시고, 눈물을 감추신다. "괜찮아. 수술이 잘 되었어." 아버님이 위로해 주셨다. 힘들어 하는 표정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그만 눈을 감았다. "그래, 좀 더 자려무나."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가족을 만난 반가움에 긴장이 풀려서 일까, 나는 잠이 들었다.
간호사가 깨운다. 마치 시끄럽게 하여 잠들지 못하도록 하는 듯했다. 또 체온을 재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링겔병의 주입량을 조절했다. 코에 꽂힌 링겔관을 확인하고, 옆구리도 확인하였다.
"소변이 나오질 않았네." 간호사가 내 성기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손으로 막으며, ’그러지마.’ 외쳤지만, 주먹쥔 손은 움직이지 않고, "으으으으." 소리만 났다. "어머, 화나셨나 봐. 소변이 막혀서, 성적인 장애가 오는 수가 있어요." 그래도 부끄럽다. 모른척 눈을 감았다.
간호사가 돌아가고, 나는 한참동안 몸을 돌려가며, 운동을 했다. 통증은 몸이 치유되는 증거라는 간호사의 말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이제 혼자 돌아누울 수가 있다.
정오 면회시간이 되었다. 문이 개방되고, 숙모님과 어머님, 김온숙 안젤라 아주머니도 오셨다. "아니, 대모님도 참... 저렇게 주먹을 꼭 쥐고 있는데, 손에 아무것도 안주셨어요?" 안젤라 아주머니가 해외 성지순례 때 구하신, 장미꽃 덮개안에 성모님이 계시는 기적의 패를 손에 쥐어주셨다. "으으으으으." ’고맙습니다.’하고 나는 기적의 패를 꼭 쥐었다.
그동안 운동한 ’혼자서 돌아눕기’를 보여드렸다. "어머, 벌써 움직이네. 저녁에 일반병실로 옮겨도 되겠어요." 지나가던 간호사가 한마디 거들자, 어머님 얼굴에 웃음이 핀다. "젊어서 회복이 빠른가 봐." 숙모님도 대견해 하시고, "성모님께서 대모님 기도를 들으셨나봐요." 안젤라 아주머니도 기뻐하셨다.
정오 면회시간이 끝나고 모두 돌아갔다. 나는 운동으로 돌아눕기를 계속 반복했다. 저녁이 되어 수술을 담당하신 교수님 회진을 하실때쯤, 나는 침대에 앉아 있을 정도였다. "일반병실로 옮기죠?" 말씀 하시고, 교수님은 옆 환자에게로 발길을 돌린다.
[2]편에 계속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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