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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의 기도...[6] 마지막 비상구
작성자이재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1-04-07 조회수1,349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지막 비상구]

 

 

"여보세요."

"은정씨? 나, 재경이."

"어떻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심한가봐. 입원해서, 정밀검사 받아야 한데. 내일 양가 상견례를 못할 것 같아."

"하는 수 없죠. 상견례는 잊으시고, 검사나 잘 받으세요."

"..."

"입원이 언제죠?"

"응, 11월 13일 월요일이야."

"기분은 어때요?"

"그냥, 신체검사 받을 준비하는 기분."

"입원하면, 못 드실 것 많으니까, 이것 저것 많이 좀 먹어요."

"알았어. 나중에 경과 봐 가며, 또 연락할께."

"조심하세요."

"잘 있어."

 

상견례를 연기했다.

위암이라는 내 생각을 그대로 얘기하지 않았다.

정밀검사도 남았는데, 미리 걱정을 만들어 줄 필요는 없었다.

내가 병을 잘 알아서 일까? 내시경 진단을 받은 후로는 별로 통증이 없다.

이 상태만 지속된다면, 병원에 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만큼, 편안했다.

 

집에서 보낸 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동생 이기정 요셉이 회사일에 짬을 내어, 병원까지 태워주었다.

어머님과 내가 병실로 들어서자, 깨끗한 시트와 환자복 한 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가방에서 입원 준비물을 하나씩 꺼내었다.

의료보험카드, 세면도구, 물통과 컵, 노트와 펜, 묵주, 매일미사책, 바둑책 한 권...

 

어머님이 체온계와 슬리퍼를 사러 병원매점으로 내려가셨다.

나는 병실 맨 구석으로 가서,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내 침대로 왔다.

이상한 일이다.

마치 환자복에 마술이라도 걸려 있는 듯 침대에 누운 나는, 바로 환자가 되었다.

어머님이 오셔서 간이 의자에 앉으셨다.

 

갑자기 병실문이 열린다.

"또, 누가 오셨나? 어이구, 막내가 왔구먼." 힘찬 음성을 따라, 문쪽을 바라봤다.

환자복 입은 할아버지 한분이 출입문 앞에 서 계신데, 텔런트 김무생씨를 닮아 보였다.

병실을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갑자기 소리친다.

"아, 일어들 나. 하루종일 자, 그냥.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병이 낫겠어."

내가 쭈뼛거리며 일어나 앉는데,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지금 간호사실에 뭔일이 있는 줄 알어. 예쁜 것들이 다 모였어.

내가 전에 ㅇㅇㅇㅇ병원에도 있었는데, 아, 거긴 뚱순이 들만 잔뜩 모아놨더니만,

여기는 간호사들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 하이고 고운 것들..."

또 병실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병실 대표격인 이 할아버지는 병에 시달리는 동료들에게 웃음을 주는 유일한 분이다.

’저 분, 참 멋있다.’

 

간호사가 몸무게 측정기를 들고, 내게로 왔다.

57킬로그램... 한달사이에 3킬로가 빠졌다.

간호사는 집주소, 전화번호, 종교, 직업부터, 과거 병력이나, 부천성가병원을 택한이유까지,

내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을 차근히 서류에 기록했다.

혈액검사용 피를 뽑고, 내일은 X-레이와 CT촬영이 있다며, 침대에 금식 표식을 붙이고 갔다.

 

"어머님, 이젠 그만 가셔도 되겠어요."

"밤에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냐?"

"여기 간호사 호출 단추도 있고, 아직 잘 움직이는데요, 뭐."

"내일 오마."

"천천히 식사하시고, 일도 보시고, 점심 때나 오세요."

여전히 불안해하시는 어머님의 등을 떠밀었다.

 

1층 현관문까지 어머님을 배웅해 드리고, 병원내의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2층에 있는 성당과 원목실을 눈여겨 보고, 중환자실을 쳐다보았다.

’음, 나도 저길 들어가겠지. 이제 길은 하나다.’

문이 굳게 닫힌 중환자실이 나의 마지막 비상구로 여겨졌다.

지금도 수술중인지, 한켠으로 마련된 보호자석에 6명이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

 

금식이 시작되면서, 팔에는 링겔이 꽂혔다.

양분섭취를 위한 당분이란다.

링겔을 꽂자, 거동이 매우 불편해졌다.

나는 줄곧 침대에 누워, 매일미사책이나 바둑책이나 TV를 보았다.

간호사가 1시간에 한번씩 병실을 체크하고 다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다, 자냐? 아니, 낮에도 하루종일 자더니만. 또 자?"

마지막으로 우리 병실 대표 할아버지가 들어오시면서 불을 끄셨다.

잠을 청하던 환자 몇 분이 어둠속에서 낄낄거리며 웃는다.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나도 잠을 청했다.

 

CT촬영날,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통만한 컵에 물을 가득부어 두번이나 마셨다.

촬영실에서 지시에 따라, 자세를 취했다.

마지막 약을 또 마시고 누웠다.

약기운이 퍼져간다. 빨대를 타고 오르는 음료수처럼, 약기운은 내 혈관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30초간 숨을 참는 시간을 두 번 반복하고 나서, 촬영실을 나왔다.

 

몇시간 후, 간호사가 병실로 왔다.

"이재경 님, 내일 오후 2시. 수술입니다."

보통 입원하고, 일주일 후 수술이 잡힌다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내 일정은 앞당겨졌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중간에 내 수술을 껴 넣었을 것이다.

 

나는 남자 간호사를 따라 화장실 옆 빈 창고로 들어갔다.

그는 이발사처럼, 면도 거품을 풀어내더니, 가슴부터 배 아래쪽까지 거품을 칠했다.

여기저기로 고개를 돌려가며, 솜틀까지 세밀하게 미는 듯하다.

하복부의 체모까지 밀려고 하길래, 바지를 치켜올리며 막아서는데,

"수술중에, 솜털 하나라도 몸 안으로 스며들면, 염증이 생기죠. 곪다가 살이 썩어요."

그는 막무가내로 하복부의 체모 상단을 왕창 밀어버린다.

 

바로 관장을 했다.

벌써 이틀을 굶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다 봤었어도, 변기에는 아직도 여러가지 이물질이 가득했다.

관장을 마치고, 병실로 오는데, 우리 병실 대표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하신다.

"내일 수술이지? 아무 걱정 말아. 수술받고 나서, 다 멀쩡하잖아. 내일 수술 끝나고 보자구."

"고맙습니다."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나는 손에 묵주를 꼭 쥔채로 눈을 감는다. 마지막 비상구의 문이 활짝 열렸다.

 

 

[7]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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