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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버서코의 비밀
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5-20 조회수957 추천수0 반대(0) 신고

 버선고의 비밀

 

 포졸이 천주학꾼 중에서 신 마리아를 빼돌려 비리버의 아내로 만들어준다. 비리버는 신 마리아를 아내가 된 것처럼 공주에서 데리고 천안에 와서 돌려보낸다. 그리고 나서 비리버는 고모와 같이 데레사를 찾으려고 체 장사를 다니다 주점에서 버선코를 본 포졸에게 붙잡힌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44-46)

wngok@hanmail.net

 

비리버는 포졸들이 빼돌려 아내를 만들어준 신 마리아가 점점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바로 자기 아내 데레사도 지금 남편을 찾아 저렇게 헤매고 있을 테지 하고 생각하니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이성철 비리버는 조치원 장터로 들어가 국밥 한 그릇을 사 놓고 먹으며 생각해 보니 앞길이 막연하다. 어디로 갈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중 목천 서덜골 자기 고모 집이 생각난다. 데레사가 먼저 찾아갈 곳이 고모 댁인 것 같고 또 그렇게 생각하니 데레사가 벌써부터 고모 댁에 가 있으면서 날마다 초조한 마음으로 자기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비리버는 허둥지둥 고모 댁을 찾아가 보았으나, 고모는 비리버가 풍파 당한 소식을 처음 듣고 놀란다.

밤새도록 두 사람은 서로 걱정하고 위로하며 의논해 보았으나 신통한 방도가 있을 리 없다. 마침내 무슨 행상을 하면서 동네마다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결정하고, 그 이튿날 비리버는 장에 가서 체를 한 짐 사서 지고 왔다. 그는 하룻밤을 푸근히 쉬고 나서 고모를 모시고 체 장수로 길에 나섰다.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찾아보았으나 찾는 데레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웬일인지 물건은 세가 나서 다 팔았다.

직산 땅에 접어들어 입장 장터에 이르니 점심때가 되었으므로 어느 주막에 들어가 점심 요기를 하기 위해 고모는 안마루로 들어가고, 비리버는 어떤 낯모르는 청년과 겸상을 하게 되었다. 상을 물린 다음 청년은 비리버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다짜고짜로

“당신 서학 하는구려!”하고 쏘아본다.

“서학이 대체 무엇이요?”

하고 비리버가 딴청을 부려 보았다.

“서학이 무엇이요, 천주학이지!”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어떻게 그렇게 똑똑히 아우?”

하는 말에 그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내가 천주학쟁이를 얼마나 많이 잡았는데…, 네 놈이 서학꾼이 아니면 왜 버선코가 저렇게 납작하냐 말이다.”

하는 말에 비리버가 자기 발을 내려다보니 과연 버선코가 납작함을 보는 동시에 자기 손은 어느덧 포승을 받고 있었다.

청년의 휘파람 소리에 다른 포졸 두 사람이 달려오고, 또 그 주막 행인들의 버선코를 조사하는 바람에 비리버 고모도 잡혔으나 그는 육십이 넘은 노인이므로 결박은 하지 않았다. 포졸들이 이 두 사람을 앞세우고 천안읍을 향해 가다가 무레미 주막 근처에 이르러 한참 무슨 의논을 하더니 포졸 두 사람은 주막거리로 달려가고 한사람은 포승줄을 손에 잡고 쉬어 가자고 길가 언덕 위에 앉는다. 비리버도 고모도 그 옆에 앉았다. 얼마를 있어도 아무런 기별이 없으므로 남아있는 포졸은

“이 자식들이 저희끼리만 술을 먹고 있는게 아닐까?”

하고 중얼거리면서 포승줄을 놓고 담배 한대를 담아 입에 물고서 부싯돌을 쳐서 담배를 붙인다. 바로 이때 비리버는 비호처럼 일어나 발길로 그의 둥을 걷어찼다. 앞으로 넘어 박힌 그놈의 목덜미를 발로 누르고서 고모를 향하여 번개같은 눈짓을 보냈다. 비리버의 고모는 벌벌 떨면서 치마 속에 있던 장도를 꺼내어 재빨리 포승을 끊었다.

비리버는 번개처럼 그 포승으로 포졸을 결박하고 그놈의 짚신을 벗기어 아가리를 틀어막아 놓고는 대여섯 칸쯤 끌고 들어가 어느 나무에다 잔뜩 붙들어매었다. 그리고 고모를 들쳐업고 나무 우거진 숲 속으로 몸을 감추어 도망하였다. 그 날 해질 무렵에 어느 촌락을 지나다 보니 그 곳은 옹기 만드는 점촌이었다. 점촌은 인심이 좋기도 하고, 또 이런 데서 혹시 교우가 있을 듯 하므로 거기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고모와 이야기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서 어느 집에 가서 말을 붙여 보려고 머뭇거리는 판에 마침 그릇 만드는 음에서 나오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그는 천만 뜻밖에도 영남 점촌에서 같이 살다가 흩어진 이래 종적을 알 수 없던 박 도마였다.

“아, 이거 성철이 아닌가?”

“아! 자네 여기 와서 살고 있나?”

둘은 서로 손을 잡은 채 무슨 말을 먼저 할지 감격하고 있을 뿐이다. 군란 때 한번 포졸의 습격을 받아 풍비박산되어 교우들이 흩어진 다음에 다시 만나 보기는 고사하고 소식을 듣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친구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만난 것이다.

그들은 박 도마의 집에 안내되어 저녁을 먹고 그 동안 지낸 이야기를 하기에 밤새는 줄도 몰랐다. 이 동네는 아직 군란의 급박한 풍운은 이르지 않은 비교적 안정된 촌락이었다.

이튿날 박 도마의 소개로 그 동네 회장과 다른 교우들도 만나 보았다. 교우들이 많은 평화시대에는 교우와 교우를 만나도 서로 인사나 하고 헤어질 뿐이지마는 교우의 수가 적은 군란 때는 진실한 교우를 만나게 되면 비록 생면부지의 초면일지라도 친동기간처럼 서로 반가워하며 자기 집에 묵어 가기를 간청하다시피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비리버가 겪은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감탄하며 동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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