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깔레 강신부
강 깔래 신부는 교우촌이라 마음놓고 마을에 어가다가 포졸을 만났다. 포졸이 누구냐고 묻는다. 그러나 투른 말로 대답하다간 신부 신분이 탄로날 것이라 생각하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때 마침 교우가 지나다가 이 광경을 보고 자기 친정아버지이며 벙어리라고 말하여 겨우 위험을 모면한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상권 19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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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교우촌을 이십 리쯤 남겨 놓고 복사는 먼저 가서 동네의 동정을 살필 겸 신부가 오신다는 소식을 전하고 영접할 준비를 하기 위해 급히 앞서가고 신부는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강 신부는 해가 어느덧 서산 위에 기울고 있으므로 천천히 걷다가 ’설마 이 동네야 어떠랴’ 안심하고 침침하기 시작할 때쯤 교우가 마중을 나올 새도 없이 신부는 교우촌 동네어귀에 이르렀다.
돌연 길모퉁이에서 포졸 두 사람이 나타나더니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하고 앞을 막아선다.
신부는 서투른 말로 대답하다가는 일이 더 글러질까 하여 더 침침한 지붕 처마 밑으로 다가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여보, 이 양반 어떤 사람이오?”
다른 포졸 한사람도 뒤로 다가서며 묻는다.
“이 양반이 누구기에 대답을 안 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포졸들의 기세는 더욱 올라간다.
그러나 신부의 입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원, 어두워 얼굴이나 볼 수 있어야지.”
“거 양인이 아닐까?”
이 말에 다른 포졸은 정신이 번쩍 나서
“그렇다면 우리 수나게."
하며 신부의 팔을 덥석 옴켜잡고 이웃집 불 비치는 들창 밑으로 끌고 한 놈은 신부의 보따리를 잡아챈다.
이때, 저편 골목에서 젊은 부인이 쑥 나서더니 신부 앞에 와서
“아버님, 왜 이렇게 늦으셨어…;”
하고 절을 하고 나더니 포졸들을 꾸짖는다.
“이 양반들이 왜 이 야단이야. 지나가시는 어른을 붙들고. 참 별일 다 보겠네!”
“아, 이 양반이 누군데 그러슈?”
“우리 친정 아버지유.”
“그럼, 왜 말이 말 같지 않은가? 아무 대답도 안하우.”
“벙어리란 말 이유.”
“그렇수?”
이러는 동안 포졸 한 놈은 신부 등뒤로 와서 강 신부의 귀에 대고
“자네 정말 벙어린가?”
하고 물어 보고 웃으며
“참말 벙어리일세. 귀가 아주 절벽이구먼…….”
하며 물러선다. 부인은 다시 포졸 앞에 다가서면서
“아무리 우리 아버지가 말을 못하시기루 그렇게 놀리는 법이 어디 있소."
하며 발끈 화를 낸다.
“여보, 우리가 모르고 그랬 수.”
“아무리 몰라도 그 따위 행실이 어디 있수!”
부인은 한 번 더 쏘아붙이고는
“자, 어서 가십시다. 아이 참 갑갑해….”
하며 신부의 동을 민다. 나무토막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신부는 떠미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뗀다.
“아이 참. 우리 아버지 보따리….”
부인은 돌아서더니 멍하니 서 있던 포졸의 손에서 신부의 보따리를 채어 가지고 다시 신부의 둥을 밀며
“어서 갑시다. 사 십리 길을 온종일 걸으시고 이따금 이런 봉변까지 당하시니. 글세 빨리 돌아가시기나 해야 아버지 팔자가 필까.”
하고 수선을 떨면서 다른 골목으로 접어든다. 포졸들은 우두커니 서서
“허 우리가 실수했는걸."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혹시 마을에 점잖은 양반이 나와서 다시 이 문제를 끄집어낼까 겁이 나서 슬슬 동구 밖으로 나와 그만 줄행랑을 쳤다.
부인은 공소 집 옆에 사는 교우로서 그 날 뜻밖에 신부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아랫말에 사는 자기 동생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어 성사 볼 준비를 하게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 광경을 보고서 여인의 빠른 머리 회전으로 신부를 구출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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