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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염병앓는 신부
작성자박용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3-06-12 조회수943 추천수0 반대(0) 신고

염병앓는 신부

 

종부 성사를 주러갔던 페롱 권 신부가 돌아오다 길에서 포졸을 만나게 되어 꼼짝없이 붙잡히게 되었다. 신부는 어떤 힘에 끌려 마을에 들어가서 어느 집 여인의 도움으로 염병을 앓는 환자가 되어 포졸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윤의병신부지음「은화」하권 61-64)

wngok@hanmail.net

 

어느 날 페롱 권 신부는 이 십리 되는 거리 새미랑이 공소에서 종부 성사를 청하는 신자가 있어서 교우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복사와 함께 그 동네에 가서 병자성사를 주고 돌아오는 도중에 주막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복사는 좀 멀리서 따라오다가 담뱃불을 붙이려고 주막에 들어갔고, 신부는 가던 길을 계속하였다. 신부혼자 조금 가다 보니 포졸 몇 명이 앞에서 마주 치게되었는데 험상스럽게 보였다.

신부는 아무리해도 저들을 무사히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가던 길을 되돌아서서 멀리 건너다 보이는 동네로 들어가는 작은 길로 접어들어 걸음을 재촉하였다. 이를 바라보던 포졸들은 수상하다 생각했던지 개구리를 발견한 뱀처럼 휘적휘적 걸어가는 신부의 둥을 노려보고 있다.

“여보게, 저놈의 태도가 암만해도 수상하지 않은가?”

포졸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제 동료들을 돌아보며 묻는다.

“글쎄, 저 작자가 왜 우리를 보고 오던 길을 버리고 저리로 갈까?”

“저 걸음걸이 좀 봐. 어딘지 황당하지 않아? 아까 이리로 올 때와 딴판이지?”

“저놈이 도적 아니면 노름꾼이지….”

“그럼 저놈이 아마 양인이나 천주학쟁이가 아닐까?”

“저 작자 걸음이 점점 빨라지지 않나. 여기서 우리가 이러고만 있으면 죽도 밥도 안되겠네, 좌우간 붙들어 놓고 볼게 아닌가.”

“그래. 적어도 술 몇 잔 생기든지, 아니면 밑져야 본전이지.”

“제기∼ 요새 양인 하나 잡으면 팔자 고치겠다.”

이에 포졸들도 정신이 번쩍 나서 신부를 향해 급히 걸음을 걷는다.

“여보, 여보! 게 잠깐 서요!”

포졸들은 큰소리로 명령한다. 신부는 자기를 추격하는 포졸들이 어지간히 육박하여 음을 느끼던 차에 곧 잡힐 것은 면할 수 없으나 최후까지 자기의 할 짖을 해보려는 생각으로 짐짓 못들은 체한다.

“이놈아, 귀먹었니? 게 좀 섰거라!”

신부는 역시 못들은 체하고 동네 사이 옆 골목으로 들어가 어떤 집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방에서 바느질하고 있던 젊은 여자는 깜짝 놀라 둥그래진 눈에 입을 딱 벌리고 어찌할 줄을 모른다. 신부는 방갓을 벗어 윗방으로 던지고는 아랫목에 쓰러지며

“포졸, 포졸…, 사람 좀 살려 주시오!”

하고는 애원한다. 아무런 악의도 없는 신부의 안색을 살핀 여자는 어떤 상황인지 대강 짐작하고 곧 일어나 이불을 내려 신부를 덮어 주었다. 그리고 방갓을 집어 벽장 속에 넣고 약탕관을 꺼내어 화로 옆에 놓았다.

신부는 대님을 끌러 이마를 잔뜩 동여매고는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대단히 앓는 준비를 갖추었다.

포졸들은 동네에 들어서서 먼저 그 작자가 동구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는지 살피고 곧 집을 뒤지기 시작하여 신부가 들어간 집에 당도하였다. 그들은 마당에 들어서는 길로 느닷없이 안방 문을 열고서

“여기 지금 누구 들어오지 않았소?”

하고 황당한 질문을 던진다.

“염병 앓는 집에 누가 발 그림자나 하는 줄 아시오. 난 모르겠으니 찾아보시구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여자는 이렇게 대꾸 해놓고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화롯불을 돋구고 있다.

포졸은 아랫목에 깔린 이불이 덜덜 떨리는 것을 바라보고 이맛살을 찡그리고 문을 탁 닫고 나서 윗방 문을 잠깐 열어 보고 부엌과 나뭇간을 살피는 체하고 나서

“염병이다, 염병이여!”

하면서 둥그런 눈으로 다른 집을 뒤지고 나오는 포졸과 마주쳤다.

“그래, 그놈을 놓치고 만담….”

“글세, 그놈이 정말 죄가 있는 놈이면 이 동네에 숨지 않고 그대로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내가 그러지 않았어. 그래, 저 등성이까지 올라가 보고 오자니깐.”

“그럼 지금이라도 쫓아가 볼까?”

“그 동안에 벌써 십 리는 달아났을 걸세.”

“이 사람, 염병 있는 동네에 더 머뭇거릴 것 없네. 어서들 나가세.”

이렇게 그들은 닭 쫓던 개 울 쳐다보듯 서운한 마음으로 되돌아 나왔다. 복사는 그 동안 막걸리 한 잔까지 받아먹고 천천히 담배를 붙여 물고 나섰다.

멀리 신부가 보일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아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판에 저편 동네로 포졸들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 동안 자기가 오던 길로 포졸들이 지나간 일은 없었다. 그러면 저들은 자기와 반대 방향에서 마주 오던 포졸들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만일 신부께서 그 길로 가셨다면 저들을 안 만날 수 없는 형편이요, 만났다면 그들로부터 실랑이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신부께서 마주 오는 포졸들을 보고 저 동네로 들어가신 것이라고 짐작하고 복사는 동네를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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