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내안에 자라난 가라지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08 조회수67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04/09/22



침묵(고통에 대한...)

 [...]하느님께서  인간과 가지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 관계입니다. 이 숙명적 
 관계는 때로  너무 힘겨운  것이어서 우리는 교회와 함께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없이는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저희이오며, 이따끔씩 
 당신과 함께 하는 삶을 견뎌 낼 수도 없는  저희이옵니다" [...]
 
 하느님께서는 많은 사안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사랑을  계시하셨을 뿐이고,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을 뿐입니다. 
 이 사랑이 최후의 계시이고 궁극적인 계십입니다. [...]
 
 [...]하느님께서 고통을, 왜 창조하셨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  들여야 합니다. 십자가 위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의 눈도 애통과 
 눈물로 채워져  "하느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 하고 
 외치며   감히 하느님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고통에 많은 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냥 당신  자신안에 그것을 받아들이십니다! [...]죄를 전혀 모르시는 분이 
 우리 죄인들 사이에  한 인간이 되셨고, 당신 자신을 완전히 비우셨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하느님께  버림받은 모습을 하셨습니다. 이제 부터는 
 그냥 슬퍼해도 좋습니다. 그냥 하느님께  버림받은 마음과 고독을 괴로워해도
 좋습니다. 나의 슬픔, 나의 고통, 나의 절규,  나의 고독, 하느님께 버림받은 
 감정,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심적 요동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네 고통 중에 너는 혼자 외로이 있는 것이 아니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모든 물음들이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러한 행위 앞에서 말을 
 잃게 됩니다. [...] 
 

 서명: 죽은 후에는 ; 신학적 토론 - 푸흐베르크 학술 강연 / 라디슬라우스
 보로스 /가톨릭대학 교 출판부 - p.19 에서 
 

 2004년 7월 25일
 주님 0000아의 고통을 들어 주시옵소서,  가슴아픈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하는 기도를 ..."성령충만하게 드리고 있는데

 제 안에서 통제가 안되는 "주님이 함께 아파하시며 더 고통받고 계시는데
 제가 주님의 저희보다 더 아픈 고통의 마음을 알지 못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고통과 아픔을 껴안으신 주님의 그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는 내면에서 통회의 회개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자신이 충만하다고 자만에 빠진 사이 가라지가 자라고  있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 이었다고 생각됩니다.(신앙안에 의미를 생각하면)

 그리고 2주후 두번째 여행/김광식 신부님역 책을 읽다가 뒤면 책광고 
함께 권해드리는 책에  떼이야르드 신부님의 물질의 심장, 그리스도교
와 웃음 2책을  사려고 온라인 주문을 하다가 솔직히 서명 이름이 죽은
후...라 망설이다 그래도 가톨릭교육원에서 철학강의를 하여주신 
김진태 신부님이 번역하신 책이라 [ 죽은 후에는 ...]을 성바오로딸
가톨릭 인터넷 서점에서 )
2004년 8월 12일 인터넷 주문하여  샀습니다. 

그런데 선체험(가라지...)이 있는 후 p.19페이지 이런 글이 나오니 
 "네 고통 중에 너는 혼자 외로이 있는 것이 아니야" 
제가 놀랠 수 밖에요  우연치고는 참 묘한  일입니다. 

참조 : 가라지? 원죄에 의한 ...
 
 [...]사실 우리는 대부분 원죄를 실감하지 못하고 산다. 일이 잘 풀릴 때는 
 특히 그렇다.  우리는 몇 년 동안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또 몇 년 동안 
 육정에 시달리지 않으면  골칫거리는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천사
 같은 삶을 시작했으며 앞으로는  분노나 육욕의 발작 따위는 더 이상 겪지 
 않을 것이 라 생각한다. 

 바꾸어 말해 원죄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죄는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 원죄을 무시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것이다.
 겸손실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런데 원죄는 적어도 이 실재의
 절반을 차지한다.[...] 
                                            - 신앙의 위기 사랑의 위기 에서




 찬미 예수님 (7월 25일 있었던 일을 편지로...)
(註: 그럴상황이 아닌데 감당키 어려운 기도가 터져나와 편지로 
 보냈습니다) 
                                                

정말 옳으신 판단입니다.
육체의 병보다 
"동생이 마음을 열고 총고백성사를 하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받아들이기를 기도하고 ..."말씀안에 믿음의 절심함이 새겨집니다.

오늘 아침하다 몸이 괴로워
저의 자매(처)에게 
신부님 강길웅,김웅렬,김보록,서정혁,...강론테이프중에
하나 틀어 들라고 부탁했습니다. 요즘 바빠서 다른 강의도 직접듣는 것이 많아
그냥 근 1여년만에 하나 틀어 달라고 했습니다.

첫인상적인 일들이 있지요.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을때,  ...

그런데 신앙생활에 이런경험 또 처음입니다.

아! 글씨 
아내가 기대하지 않은 성령 치유 테이프를 틀었습니다.
전에 저의 체험담에 비실명으로 말씀드린
그 당시 000 본당 부주임 신부 이00  0000오 신부님인데 현재는
성령 지도신부님이 되어계시는데 그 당시 자매님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으셨는데 그분의 성령 치유 테이프를 2년전 자매님이 주신것  그 당시
1~2번 듣을때 그냥 좋으신 말씀으로만 들었습니다

아! 글씨 그런데 
오늘은 처음 부터 누워듣는데 몸이 전율?이 올라 오더니 눈에 잔잔히
눈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저희집 따님?이 시끄럽다고 나와서 소리을 줄이자 분위기 다운되어 
에랏 !안방으로
옮겨달라고 하고 하도 아파서(ch? 극심한 통증중)
 배개에 머리를 대고 무릎꿇고 000?약간 든 (너무 아파서...)
자세로 듣고 있다가 느닷없이 제가 통회의 기도를 드리는데
(註 : 저의 의지,체질이나 성격이나, 지향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치유기도을 전구하고 싶었거든요)
 2년전 한번 아프리카 성령기도회에서 경험 딱 한번 한적이 있는데
(註 :이 신앙체험을 글로 또 정리 해야 합니다. 신앙안에 의미는
 영혼구원 즉 복음화의 긴급성(지노 신부님 표현 - 응급상황)에 
 신앙체험담이 있습니다)
그때와 같이 안방에서 눈물 콧물 기도가 나오는데...

"주님 0000아의 고통을 들어 주시옵소서,  가슴아픈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하는 기도를 ..."성령충만하게 드리고 있는데

 제 안에서 통제가 안되는 "주님이 함께 아파하시며 더 고통받고 계시는데
 제가 주님의 저희보다 더 아픈 고통의 마음을 알지 못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고통과 아픔을 껴안으신 주님의 그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는 내면에서 통회의 회개기도가 나왔습니다.

아! 제 안에 성령충만에 새벽미사에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고 
주님의 은총 속에 신앙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가라지가 자란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겉으로 구송으로 읊조리는 기도하는 
가라지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손길은 언제 어디서 어떤 때 역사하실줄을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아픔을 다 안고 계시는데 ..., 저희보다 더 아파하시는데...
 
000나 자매님을 통한
저의 신앙생활에 
제가 아픈 기간을 통하여 또 치유와 가르침을 주시는 
온 사랑의 주님은 세세에 영광과 찬미를 받으시옵소서. 아멘
 
두서없는 글 
이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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