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을 통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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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봉순 | 작성일2004-10-16 | 조회수67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몇 일 전, 성서를 읽다보니 오늘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라도 바쳐야겠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성지, 절두산 오후 3시 미사참례를 하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버스 좌석에 앉아 눈을 감으니 수많은 기도의 대상이 떠올랐습니다. 모진 고통속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우들, 굶주림에 허덕이는 가난한 사람들, 자유를 잃고 갇혀있는 이들. 학대 받는 어린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계신 주님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얼마 후 눈을 뜨니 앞자리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청년이 앉아 있었습니다. 청년은 몸을 계속 긁고 있었습니다. 가슴, 목, 머리. 등뒤로 손을 넣고 긁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은 상처마다 피가 응고되어 있는 심한 피부병 환자였습니다. 순간 청년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부스 럼이 나 잿더미에 앉아서 토기조각으로 몸을 긁던 (욥기 2, 7-8)욥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상은 물론 생각이 빚어 낸 몇 장면의 영상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은 채, 버스에서 내려 성지까지 묵상을 하며 걸었습니다. 청년은 불행한 이들을 대신한 주님의 등장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얼마나 우리의 기도를 원하시고 계시기에 청년을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을까? 착각이라도 저는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이런 작은 나눔, 늘 자각하며 살아야 하는데 너무도 헛된 것에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미사 내내 청년을 생각하며, 이제는 기도대상을 제 중심에서 주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옮겨야 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은 주님의 뜻을 받들어 기도노선을 바꾸게 될 이 다짐이 제 신앙생활 안에 깊이 뿌리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염치없는 기도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수많은 기도 중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바치는 공동기도는 매번 건성일 때가 많았습니다. 언제나 내 아이들, 내 주위 사람들의 행복만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와 나눔이 어떤 것인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주신 참 기쁨과 평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낍니다. 이제 남은 생, 말씀을 사는 것만이 최선의 삶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모든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은총의 깨달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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