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런 꿈
작성자이봉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8 조회수917 추천수2 반대(0) 신고

 

한동안 성민이 엄마가 들려 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늘 행위로 감동을 주는 성민이가 흘린 눈물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민네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 "미니"를 데리고 엄마와 아들이 동물병원을 다녀

오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성민 네 집 가까이에 성당이 있어, 그 옆 숲길을 지나

는데 벤치 밑에서 꿈틀대는 강아지를 한마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주인도 없이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다가가 살펴보니 장애가 있는 버려진 개였습니다.

그냥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남달리 측은지심이 많은 모자이기 때문

입니다. 모자는 강아지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갔습니다. 검진을 마친 의사는 두

다리도 쓰지 못하고 건강도 좋지 않으니 안락사를 시키는 게 좋겠다고 권했습니다. 잠시라도 보호했던 사람에게 권한이 있기 때문에 의견을 물어 왔을 것입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성민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안락사

만은 안 된다고 성민이 엄마도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고3인 성민이가 수능

시험이 끝날 때까지만 엄마가 보살펴주면 그 다음에는 자기가 키우겠다고 사정한 것 같습니다. 아들의 간곡함에 성민이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동물병원에 강아지를

입원시키고 돌아와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저 애가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런지 걱정이라며 답답 해 했습니다.

 

측은지심이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는 언제 어디서나 생명을 살립니다. 기기에는

분명 어떤 형태로든지 헌신이 따릅니다. 이 헌신에 자신을 얼마나 내어주느냐에

따라 꺼져 가는 생명이 되살아납니다. 이런 재생의 기미는 대상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는 사람의 취약한 부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건강이 좋지

않던 동생이 근래에 듣지 못하던 밝은 음성으로 전화를 받습니다. 그 음성에는

미아를 찾은 엄마의 기쁨 같은 게 서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가족의 측은지심이 이번만은 별로 탐탁하지 않았습니다. 난들 

버려진 강아지가 왜 불쌍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안정을 요하는 지병을 가진

동생이 식구들의 뒷바라지도 힘겨운데 다리를 못쓰는 그 강아지로 인해 축나는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래서 어느 날 성민이와 그 애 누나를 명동으로 불러내 피자를 먹으며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은 사람을 위해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이니 엄마의 건강을 위해 "해피"를 동물 보호소로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착잡한 기색을 보이며

아이들은 동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다 가도록 해피를 동물보호소에 보냈

다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만 몰인정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후 강아지는 네

발로 뛰어 다니고 있습니다. 수술을 시키고 식구들의 보살핌으로 이렇게 꺼져 가는 한 생명을 살려 낸 것입니다.

 

장애 견이 안쓰러워 흘리던 성민이의 눈물이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성민이 부모가 지원하고 싶어하는 학교에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 학교에는 로만 칼라를 하신 교수 신부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 분위기를 타고 복사대장까지 했던 성민이가 재학 중에 혹시 신학교 갈 결심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사제의 가슴만큼 눈물이 많이 고여있는 장소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위에도 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는 성민이의 착한 심성이 나에게 이런 꿈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나의 이런 꿈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성민이는 자기가 가고싶은 학교, 하고싶은 공부를 선택했습니다.

수시 모집에 합격을 한 것입니다. 보도에 떨어지는 낙엽 같이 나의 꿈은

이렇게 쓸쓸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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