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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빛 안개 자욱한 초남이 들녘에서 - 전주교구 초남이 성지를 찾아 - |
어머님, 문안 아뢰옵니다. 소녀가 시댁에 들어오는 날, 우리 내외 서로 수절하기로 맹세하니 평생 근심이 일시에 풀려 4년 동안을 형매같이 살매, 그 사이에 혹독한 유감이 몇 번 있어 거의 열 번이나 무너질 뻔하였사오나 공경하올 성혈 공로로 악마의 계교를 물리쳤나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어머님께서 이 일로 걱정하실까 함이오니 이 글월을 받으실 때 소녀의 얼굴을 대하심같이 받으시옵소서. 이 세상은 헛되고 거짓됨이 옳소이다. 할 말씀 많사오나 더 쓸 수 없사와 이만 그치옵니다. - 루갈다의 옥중 편지에서
먹어라 먹어야 산다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이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1.16-17>
구약에서는 '먹지 말라'는 것을 먹어서 죽었고
신약에 와서는 '먹어라'는 것을 먹지 않아서 죽는 셈이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
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
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이것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으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요한 6,48-58>
사제들은 미사 때마다 기적을 이룬다.
밀떡과 포도주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성체를 이루다니!
웬,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는 이를 믿는다.
믿음 자체가 곧 기적이다.
기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기에 생명을 걸겠는가?
"엎디어 절하나이다. 숨어 계신 천주성이여
우러러 뵈올 수록 전혀 알길 없삽기에,
보고 맛보고 만져봐도 알길 없고
다만 들음만으로 믿음 든든하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
진리의 말씀보다 더한 진실 없나이다.
십자가 위에서는 천주성만 감추시더니,
여기서는 인성마저 숨기고 계시오니,
나는 두 가지를 다 굳이 믿나이다.
주님의 죽으심을 되새기는 기념이여,
우리에게 주는 생명의 빵이시어,
당신으로 내 영혼 살아가나이다.
더러운 나 당신 피로 씻어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넉넉히 씻으시리다.
지금은 우러러도 숨어 계신 예수님,
언젠가는 드러나실 당신 얼굴 뵈옵고,
당신 영광 환히 보며 복되게 하소서. 아멘
1989년, 세계 성체대회가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될 즈음, 서울
여러 극장에서 영화 '로메로'가 한창 상영 중이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남미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주교님이 미사를 봉헌
하던 중 반란군이 성체를 향하여 총을 쏘아 성체가 마루바닥까지 흩
어진다. 흩어진 성체를 모으려다 로메로 주교님이 총에 맞아 죽는 장
면이다
<미션>이라는 영화도 모든 이들에게 많은 감명을 주었다.
선교사 신부님 한 분이 미개발 지역에 들어가 가난한 마음 작은 성
당에서 성체를 모시고 행렬을 하는 중이었는데 이 지방을 침략하려
는 약탈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30여 리를 걸어가서 성체거동에 참
례했다. 그 당시 전주 시내에는 전동성당 하나밖에 없었다.
성당 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성가를 올렸을 때의 장면
지금도 마음의 스크린으로 비쳐 본다. 너무 환하게 화면에 뜬다.
가끔 오목대를 올라 가 본다. 지금은 왜 그리 좁게 보이는지!
남원 성당을 출발하여 성체를 모시고 시내 한복판으로 행렬이 계속
되는데 길옆에 서있던 구경꾼 중 한 여인이 약간 알아들을 만한 목
소리로 " 야 저기 좀 봐, 저 신부들은 장가를 안 간데! 저 가운데 있
잖아. 야 , 아깝다, 아까워."
가운데 신부가 나임을 알고 있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계속하였다.
신부들이 소란을 피우는 것이다. 나보고 "잘났다"했다고.
루갈다와 요한은 첫영성체할 때 동정 지키기를 서원 하였다.
혼인을 맺고 동침하면서 육정이 일어날 때마다 예수님의 성혈 공로
로 유감을 물리쳤음을 친정 어머니에게 적어 보내드렸다.
소녀가 시댁에 들어오던 날, 우리 내외 서로 수절하기로 맹세하니
평생 근심이 일시에 풀려 4년 동안 형매같이 살매, 그 사이에 혹독한
유감이 몇 번 있어 거의 열 번이나 무너질 뻔하였사오나 공경사올
성혈 공로로 악마의 계교를 물리쳤나이다.(옥중편지 요약)
이들이 동정을 지킬 수 있음은 성체 성혈의 은덕이었다.
초남이 성지는 성체성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곳에 순례할 때는 성체를 모셔야 함은 당연하고 마땅하다.
불가에서는 수도자들이 좌선함을 으뜸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성체 앞에 손을 모으고 있노라면 일만 근심이 녹아 내린다.
좌선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좌선 할 때의 자세는 벽을 바라보지만 우리는 성체께로 향한다.
좌선의 방법은 참회도 청함도 감사도 없이 무아지경에 이르기만을
바랄 뿐이지만 성체 앞에서는 소망, 감사, 용서를 청한다.
벽은 소망을 채워줄 능력이 없지만 성체는 전능한 분이시다.
모든 수도원에서는 성체 조배 시간을 제일 소중하게 여긴다.
봉쇄 수녀원에서는 하루 대부분을 성체 앞에서 묵상한다.
글라라 수녀원이 독일에서 전주교구로 처음 진출했을 때는 지도 신
부님도 정해져 있지 않아 교구청 신부님들이 매일 미사를 봉헌했다.
하루쯤 미사를 궐함직하지만 미사가 없는 날에는 대재를 지킨다기에
행여 수녀님들이 굶고 있을까 염려되어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밥은 굶더라도 성체를 모시지 않을 수 없다는 원장 수녀님의 말씀
이다.'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주님의 기도가 육신의 양식을 주시라는
기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예수께서 주야 40일 동안 단식하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 악마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게 해보시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성체가 내 피와 살과 하나 되기를 바라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와 밀착시킬 수 있는 더 깊은 방법이 있을까?
성체를 모시는 순간 내 안에 모든 불순물이 모두 녹아버린다.
성체가 내 안에서 피와 섞여 있는데 무슨 오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성체를 내가 모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먹히신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안에 사신다."<갈라 2,20>
성체는 생명의 빵이다
아이들은 먹을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
회개함이 없이 성체를 마구 영할까 봐 사도 바오로는 경고 하였다.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주님의 빵을 먹거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
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1고린 11, 27-29.>
김 스테파노 환철 신부님 저서 - 속아서 된 神父 - 발췌 (10월 3일 일요일 초남이 성지순례 사전 답사를 다녀와서..) 자서전에서 참으로 많은 감동을 받았읍니다.
宋사도요한 ed. 오금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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