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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지 답사에서 있어던 신비한 일들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10 조회수1,439 추천수1 반대(0) 신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안에
살아 갈 수 있는 은총을 주시어
늘 감사한 하루 하루이지만
10월 3일 일요일 초남이 성지사전 답사날은
이상도 하며, 참 우연한 일치로서는
신비한 날이었습니다.
 
성가
 
"내가 사랑 받았고  은총 속에 산것은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셨도다. 주의 참된 평화여
신성한 감격이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가슴으로 느끼며 가사을 한알씩 음미 하듯이
새겨 봅니다.
 
초남이 성지에서 파가저택 자리에 남아있는
웅덩이와 찹쌀배미, 정지샴 교리당을 둘러
보았습니다. 

유항검 가족 가매장터 초남이 옆 재남리 뒤편에서
십자가 아래 김 스테파노 신부님과 답사팀 4명이
순교자를 위한 성가를 노래하였습니다.
석양의 노을 빛이 물든 들판을 뒤로 하고서
신앙 선조들의 피와 살이 베여있는 
거룩한 땅(聖地) 위에서 김 스테파노 신부님께서
답사팀에게 특별히 강복하여 주신 
그 신성한 감격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위 사진은 이 루갈다 동정녀 가슴에 간직하신채
순교하신 십자고상 그림입니다.
한국순교복자수도회 면형강학회 에서는
한달마다 한가정에 번갈아  모시어 함께 기도합니다. 
십자고상을 전번에 모신  요한금구 형제님,
연이어 스테파노 형제님 사도요한은 다음 순번으로 10월에 
곧 성지순례시 받게 청원드렸습니다. 
우연히도 참 이상하지요.
원형 십자고상이 나온 성지 바로 옆에서
이 루갈다 동정 순교자께서 당시 간직했던 
십자고상을 재현한 고상을 모시고 집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스테파노 형제가 우연히
말씀하자 "그것 내가 축성한 것이요" 하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여 모두 놀랬습니다.
 
김 신부님을 별도로 만나 뵐 일과
재남리 가매장터에 답사 계획은 예정에 없었습니다.
답사후 시간이 이미 오후 4시가 넘어 
일요일 고속도로 교통문제와 월요일 업무로
시간상으로 바로 서울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ㅅ형제님이 교리당 구경을 가자고 하여
정지샴(유항검)에 들렀다가 봉사자 자매님으로
부터 [피묻은 쌍백합]책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김 신부님께서 교리당에 일보러 오시어
만나게 되었고 책에 싸인을 받으면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최근 재남리 가묘장터에 4분의 순교성인 묘로 추정되는
묘소가 발견된 신비로운 체험 말씀을 하시던중에 
신부님께서 그 곳을 보여 주고 싶다고 하시어
기쁘게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   전주교구 초남이 성지를 찾아 - 
답사팀에 함께 모두 가게 된것도 신비입니다.
그리고 성지순례피정때 치명자산 14처에서
기도문을 읽으신 바르바라 형제님도 증인(?)입니다.
일정상 토요일에 답사가기로 계획 되었었는데
일이 생겨 일요일로 연기되어 
원래 답사예정팀이 많이 빠지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준비팀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님, 문안 아뢰옵니다.
소녀가 시댁에 들어오는 날,
우리 내외 서로 수절하기로 맹세하니
평생 근심이 일시에 풀려 4년 동안을 형매같이 살매,
그 사이에 혹독한 유감이 몇 번 있어
거의 열 번이나 무너질 뻔하였사오나
공경하올 성혈 공로로 악마의 계교를 물리쳤나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어머님께서 이 일로 걱정하실까 함이오니
이 글월을 받으실 때 소녀의 얼굴을 대하심같이 받으시옵소서.
이 세상은 헛되고 거짓됨이 옳소이다.
할 말씀 많사오나 더 쓸 수 없사와 이만 그치옵니다.
- 루갈다의 옥중 편지에서

 
성지 답사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연히 말을 꺼내다 축성하신 신부님임을 만나게 된것도,
그곳도 다른 곳이 아니고 백여년전 발견된 터 근처이니 신비입니다.
그리고 전주 대교구 주교님도 다녀 가신
재남리 가묘장터의 큰 십자가상 앞에서
함께  석양에 순교자 찬가를 부르며, 기도 드리며
강복을 받으니 참으로 신비중에 신비였습니다.
하느님의 손길과 신앙선조님들과 통공 하는듯이
마음이 충만하였습니다.

가운데 사진은
이 루갈다 동정녀께서 가슴에 간직했던 십자고상이
발굴된 곳입니다. 1914년 전동 성당 보두네 신부님이
치명자산으로 모셨답니다.원십자가는 절두산에 
있습니다.
유항검 일가 가묘장된 거룩한 곳에서
신부님과 석양에  순교자 노래를 부르며
강복을 묘소 앞에서 받으니 

놀라우신 하느님의 계획 
세밀하신 하느님의 손길에 모두 놀랬답니다.
감사와 찬미을 올립니다. 

 

                  (강복을 주신 김 스테파노신부님) 

 


***********초남리 성지에 대한 간략 설명******

초남이 성지 역사의 유적을 찾아 본다 (140p) 호남 천주교 발상지 이 승훈 베드로가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같은 해에 유항검이 세례를 받고 내려와 호남의 사도로서 전교를 시작하였다 첫 공소 마을 지방 교회로서는 맨 처음 신자 마을이었다. 교리를 가르치고 공동기도를 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마음을 공소라 칭한다. 첫 미사 봉헌 주문모 신부님이 호남지방에서 처음 미사를 봉헌했던 것이다. 동정부부 주 신부님의 주선으로 역사적인 동저부부가 이루어졌다. 파가저택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영입했다는 이유로 역모 죄로 몰려 일가족이 순교 당했다. 교리당 유항검이 몰래 교리를 가르쳤다는 교리당 자리가 있다. 서울에서 세례를 받고 내려와 먼저 가족들에게 세례를 받도록 교 리를 가르쳤고, 마을 사람들, 소작인들, 머슴들에게 세례를 주었 고 서울에 오가는 길손들을 사랑채에 재우고 밥 해주고, 술 주고 떡 해서 교리를 가르치어 그 수가 200여 명이나 되었다. 참쌀배미 떡과 술과 밥을 해준 텃논을 배미라고 불러오고 있다 정지 샴 유항검 식솔들이 마셨던 샘 자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유항검 가족 가매장 초남이 옆 재남리 뒤편에 유항검 일가족 옛 무덤 자리가 있다. 신유박해 순교 당시 머슴들이 시신을 모아 매장하여 1914년까지 묻혀있었는데 전동성당 초대 신부님께서 치명자산으로 이장했다. 초남이 순례자의 노래 이충우 작사 김영자 작고 호남 벌 사도마을 유항검 생가 문객 접대 논배미 쉬흔 마지기 재산 많고 덕망 높은 지방의 토호 과거 응시 준비하러 서울 갔을 때 도움이 될까 하고 실학자를 만났더니 뜻밖에도 천주학을 배울 줄이야 초남이 사목 방문 주문호 신부 큰 아들 요한 동정 결심 듣고서 같은 생각 소개하니 루갈다 규수 독신생활 죄악시한 조선조 풍습 왕족과 양반 자녀 외관상 더욱 불가능 그리하여 동정부부 탄생한 것을 두 사람 혼배하여 맞은 첫날 밤 십자 고상 바라보고 동성서약 성 요셉과 성 마리아 닮고자 하여 서로 사랑하면서도 침법치 않고 오랍과 누이로서 깨끗하게 살았으니 그리스도 역사에도 유례 없는 일 위험한 고비마다 기도 드리고 성혈 공로 의지해 온전한 봉헌 동정부부 순교자 피 묻은 쌍백합 파가저택 (파가저택) 웅덩이를 만들었으나 그 역사 알고 보면 박해 때 수도원 자리 낮은 데로 임하소서 완덕의 길로
 
(파가저택)
하느님에 대한 생각을  보존하기보다 
그분의  현존에 의하여 깨달음을 얻은 순간들을 기억하라.
" 너희가 바로 나의 증인이다 " (이사야 43:10)
 

********참고***** 출간되었습니다. 
참 감동적인 자서전(속아서 된 神父)입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순교영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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