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이 정해 놓으신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는 채 살아간다.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 가는 길을 막아도 그것을 극복한 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고귀한 순간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나는 한동안 자기의 힘으로 살아 가기나 하는 듯,
고삐 풀린 망아지 처럼 맹목적으로 인생의 허허벌판을 날뛰었다.
하느님은 그러한 나를 침묵을 지키며 내버려 두셨다.
그러나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단 하나라도
그대로 버려두실 하느님이 아니었다. 끝내 불호령은 떨어지고 말았다.
"까불지 마라! 너는 네가 아니다!
아무도 너를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너는 내 것이니 너의 모든 것은 내 손에 달려있다!"
폐결핵에 기관지파열, 합병증...육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썩어 들어갔다.
목구멍에서 뭉클뭉클 검붉은 생명줄이 쏟아져 나왔다.
밀려 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 맥없이 땅바닥에 쓰러져 절규를 하면서도
나는 애타게 부르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리고, 아직은 할 일도 많은데, 이대로 죽고 마는가...
살아있는 자신이 밉고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내게 준 그 고통은 나를 죽이기 위한 형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한 유일한 선택,
우리를 떠난 양을 살리기 위해 내게 내리신 하늘의 지엄한 명령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병마로 부터 해방된 얼마 후의 일이이었다.
가슴을 도려 내는 그 아픔은 완전한 나를 만들기 위한 치유의 은총이었다.
허물어져 가는 내 영혼을 변화시키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묵묵히 참으신 까닭은 오직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하느님은 이렇게 나를 불러 물을 주고 햇빛을 쪼이셨으며,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에게 생명의 지프라기가 되어 주셨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되던 순간부터 나는 전적으로 내것이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하느님의 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오늘의 고통이 내일이면 더 큰 기쁨이 되리라는 것을 하느님은 아신다.
그러므로 나약한 인간들에게 커다란 아픔까지도 허락하시는 것이다.
육신의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은 나에게 영적인 부활의 기쁨까지 주셨다.
내가 죽어 흙이 되는 순간 까지 주님은 이제와 같이 나를 사랑하실 것이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으니 고통은 곧 부활을 의미한다.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내 몸에 알맞게 맞추어 주신 하느님의 선물.
십자가에서 피해 도망치려 함은 죽음을 자초하는 자기 삶의 포기이다.
예수님은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것이 제가 마시지 않고는 치워질 수 없는 잔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마태오 2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