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원성(실재) | |||||||||||||||
---|---|---|---|---|---|---|---|---|---|---|---|---|---|---|---|---|
작성자송규철 | 작성일2005-11-08 | 조회수1,96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아마도 개인 신앙안에 일어나 가장 ㅡ 큰 사건, 일생동안 思考에 제일 큰 ① 충격은 성당 감실 앞에서의 신앙체험(2002년 여름) 입니다. '영원성 실재'를 자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영성체후 미사성제안에 일어난 실질 체험입니다.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주님께서 더 가까이 오시면 어느 聖人의 말씀 처럼 주님의 사랑앞에 '타 죽어 버릴것만 같습니다.'라는 표현이 그래도 제일 가까운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이 2005년 가을 피정을 통해 확인하게 된 '원체험'이란 것 이었습니다. 단어도 생소한 '원체험'이란 것이었습니다. 충남 아산 공세리 성당으로 피정('05,10월23일일요일) 이 있었습니다. 강론중에 신부님이 '원체험'이라는 생소한 단어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곳 가톨릭 신자분들은 구교의 굳은 믿음의 뿌리를 두신 분들 이랍니다. 신부님이 그분들은 놀랠 만한 믿음 생활을 하고 계시다면서 재미있게 이야기 한 토막 꺼내 셨습니다. 실화라고 하시면서... ... 8순의 한 할머니는 묵주신공을 드리려 하면 방해하는 마귀?가 있는데 바로 같이 사는 영감 (할머니의 표현이랍니다. 모두들 폭소 )였답니다. 그 영감님이 기도하려 하면 "담배 갖다 주소, 재털이 가저 오소, 물 좀 주소... "등등 하도 귀찮게 해서 도저히 묵주신공을 드릴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어느날 장롱속에 숨어서 대략 평소 15분정도 걸리는 묵주기도 5단을 드리는데... 환희로운 평화에 휩싸여 은총의 시간을 보내셨답니다 그날 장롱 밖에 나와 보니 반나절이 지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신부님의 가르침으로 '원체험'이랍니다.
그후 할머니는 어디로 놀러 가ㅡ는 것도 마다 하시고 묵주신공을 드리면서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 평화를 얻고 있답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
그 강론을 들으면서 가을 피정을 통해 더욱 신앙안에 믿음의 확신이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 강론을 들으면서 '원체험'이 떠올랐습니다. 10월 첫월요일 평일미사(새벽 6시)를 본당에서 참례하지 못해 명동 지하 성당 11시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그리고 명동성당 성물센터 에서 '칠층산' 책을 샀습니다.
신앙안에 선(先)체험이 있고 여정안에 두려움과 회의에 들어설때면 마치 답(答)을 주시듯이 간혹은 우연히 사든 책 속에서 참뜻를 발견케 되는 우연이며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합니다. 신비입니다.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칠층산' 冊에서 새롭게 발견한 내용 입니다.
메마른 신앙안에 또다시 안개 속에 휩싸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자꾸만 마음이 식어가는 것만 같고 광야를 거치는 심정이었습니다. 어느 생각 한편에서는 '영원성 실재'에 대한 체험에 대한 스스로의 작은 의문에 질문을 던져 보는 순간들이 불쑥 불쑥 있었습니다.
그런 순간이 스치는 날이 있던날 '05년10월 중순경 전철에서 '칠층산'을 읽던중 저의 원체험한 내용( 2002년 여름에 원체험을 회상하며 2004년 8월에 올린글 내용: 아래 첨부) 토마스 신부님이 사제가 되기전 평신도로서 겪었던 원체험이 쓰여져 있어 저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갈수록 정말 부인 할 수 없구나. 영원성의 실재 앞에 더 이상 의심할 수 없구나. 와~ 이러한 일련의 작은 의문 속에서 신앙의 여정안에 거듭 거듭 격려와 위로를 얻게 됨이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의 현존과 실재에 대한 작은 의심들이 도저히 부인 할 수 없는 확신으로 더욱 커가게 할 뿐이며, 확신에 차게 되어 갑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평신도로서 감히 이런 큰 은총을 어떻게 받게 되었을까? 별로 선한 것도 없이 거룩한 행동을 한것도 없이 감당할 수 없는 체험을..., 낮은 저에게 이런 큰 일이 일어났을까? 일어날수 있는 일인가? 신앙안에 의미는 무엇일까?
왜? 성당에 가서 매일 영성체하며 감실 앞에 침묵기도를 하는지 혹 물으신다면 그것은 바로 '원체험'으로 부터 온 격로와 위로 입니다. 만남의 때 보여주신, 열어주신 그 순간의 감사함과 경외스러움에서 벗어 날 수가 없게 되어 가는 것만 갔습니다 점점 더... 더... 더...
저 개인 신앙속에 '원체험'의 회상을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칠층산' 冊에서 표현을 빌리어 개인적 원체험을 공유 하는 것이 좀더 사실적 일것 같습니다. 아래 인용한 칠층산의 내용 대로 장소와 시간만 다르지 성당 감실 앞에서 일어난 실질 '원체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공세리 성당피정을 통해 인도하심은 '원체험'이라는 실재하는 현존을 통해 굳은 믿음으로 깨우치기 위함이며, 기도하는 신자들이 성령안에 하나되어 새벽미사 제1독서 봉독 말씀(10월 28일 금요일)이 더욱 큰 확신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도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19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성전이 됩니다. 22 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③ 칠 층 산 내용 중에서 (2005년 10월 중순 독서중 격려와 위로가 됐던 글)
내가 아바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더 중요한 것을 알아냈다. 내가 이제껏 은근히 바랐던 셍바 나무 위의 성모 발현 같은 것은 정말로 부질없는 것임 을 지성적으로 뿐만 아니라 체험으로도 불시에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 체 험은 저술에의 길이 아니라 이 세상을 전적으로 무한히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 바로 그분에게로 가는 길을 터주는 또 하나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아바나의 성프란치스코 성당 안에 있었다. 그날은 주일이었다. 엘 산도 크리스도에 있는 어떤 성당에서 영성체를 한 후 이곳에 다시 미사 참례를 하러 와 있었다. 성당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제대 앞에는 어린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아이들이 첫영성체 예식을 하고 있었는지 아닌지 잊어버렸으나 하여간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어린이들이었다. 나는 성당 끝자리에서 어린이들의 머리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성체 축성 때가 되었다. 사제가 성체를 거양한 다음 성작을 거양한 다음 성작을 거양했다. 사제가 성작을 제대 위에 다시 내려 놓았을 때, 갈색 수도복에 흰 띠를 맨 프란치스코 수사 신부가 어린이들 앞에 우뚝 일어섰다. 그러자 어린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사도신경이다. “하느님을 믿나이다.!” 갑작스러운 우렁찬 승리의 고함소리, 쿠바 어린이들이 목청껏 외치는 환희의 신앙 선언이었다.
그러자 방금 제대에서 성체 축성 때 이루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 성체 축성 의 말마디로써 하느님이 여기 현존하시어 내게 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 그 외침처럼 갑자기 정확하게, 그리고 더 할 수 없이 또렷하게 느꼈다. 이 자각 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도 나는 거기서 청천벽력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어떠한 볼 수 있는 빛과도 무관한 밝은 빛이었고, 일체 의 체험을 무색케 하는 심원한 내밀의 빛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이 빛이 어떤 의미로는 ‘보통’ 빛이었다는 점이다.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었던 이 빛이 환상적이거나 이상한 점이 전혀 없는 누구에게나 제공 되는 빛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한순간에 극도로 명백하게 된 신앙의 빛이었다.
마치 내가 하느님의 현존을 목격하여 갑자기 그 눈부신 빛 속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눈을 부시게 하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는 빛이라고 표현한 것은 감각이나 상상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내가 그것을 ‘빛’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건이 오래된 지금 비유로 말하고 있는 탓 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그 자각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비유나 표상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체의 감각적 체험을 무시하고 곧장 진리의 핵심을 찌른 것이었다. 마치 내 앞의 제대 위에 육체적 으로 현존하시는 ‘진리’와 나의 지성이 돌연히 직접 마주 대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만남은 사변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이요 체험적인 것이었고, 지식에 속하면서도 한층 더 사랑에 가까운 것이었다. 또한 이 빛은 내가 지금껏 자각하고 있던 소망이나 욕구의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것으로서 일체의 정서에서 순화되고, 감각적 갈망에서 정화된 빛이었다. 그리고 직관처럼 뚜렷한 직접적인 사랑이었고, 곧바로 ‘진리’를 소유하려는 사랑이었다.
내머리에 떠오른 첫번째 분명한 생각은 ‘천당이 바로 여기로구나.’하는 것이었다. 오직 한순간의 일이었지만 그 놀라운 환희와 깨끗한 평화와 행복이 몇 시간이나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이 빛이 이상한 것은, 내가 이미 언급한 대로 ‘보통’의 것으로서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빛을 재차 받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신덕과 애덕의 행위를 하는 것 외에는 내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어떻게 해야 이 체험을 되살릴 수 있을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신덕의 행위를 하더라도 그와 같이 갑작스럽고 명확한 자각을 또 다시 체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초월한 곳에서 부터 온 은혜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바나의 성프란치스코 성당에서의 미사 중에 내가 이 빛을 받 았다고 해서 내가 그 사정을 분명하게 이해하였다거나 또는 기도에 매우 진보가 있었다고는 여기지 말라. 내 기도는 대체로 염경기도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묵상기도도 하기는 했으나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 읽은 책에 따라 오락가락 하는 감정적인 묵상기도였다. 그리고 내 기도는 대체로 프란치스코회 수련원에 입회하려는 희망으로 미리 해본 것이요, 기도란 이런 것 일 거라는 상상이었으니 만큼 한마디로 말해서 기도가 아니라 대낮의 꿈에 불과 헸던 것이다.
p360 칠층산 /토마스 머튼/바오로딸 에서 발췌
[...] 그리고 조용하면서도 근엄해서 신심이 깊어 보이는 인물들이 서너 명 있었은데, 알고 보니 그들은 이 수도원의 은인들이어서 다른 손님들에 대해 일종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간택된 특수 계층의 사람들로서 그들 나름의 준(準) 성소를 받은 이들이다. 수도자들과 수녀들을 딴 세상 사람들로 떠 받드는 이 사람들에게는 보통 이상의 겸손이 숨겨져 있었다. 훗날 하느님은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그들이 지원했던 수도자들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었음 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리라. 현대 미술에도 조예가 깊고 한때는 재즈 음악에 열중하였던 저자가 26 세의 나이로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명성을 포기하고 트라피스트 수도원의고독 속으로 잠겨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심금(심금)을 울리는 정직한 고백이다. 수도명은 M. 루이스 신부다(1968년 사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