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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한 생명과 성서 봉독- 살아있는 말씀으로
작성자송규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6-01-06 조회수1,79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06년 1월 6일 금요일

 

 

저는(스테픈 버니) 요한 복음에 관한 사랑으로 46년을 살아 왔습니다. 제가 열아홉 살 때, 요크의 탬플 대주교가 쓴 <요한 복음 독서>(Readings in St. John''s Gospel)를 읽었는데,

그때 제 내면 깊은 곳을 뒤흔드는 그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 저는(스테픈 버니)  요한 복음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저는 요한 복음을 읽고 저 자신과 인간의 삶과 하느님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관점으로 그 날에 일어난 사건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의 말씀들이 그 사건을 비추어 주었고, 그 사건 역시 요한 복음의 말씀들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즉 요한 복음의 이야기와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 사이에 신비한

상호작용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과 오늘의 사건 사이에서 신비한 그 상호 작용이 너무나 밀접하여, 제게 무엇이 우선이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 저는 매일 일어난 사건들을 일기장에 적고, 그 사건들을 요한 복음에 비추어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스테픈 버니) 반대로 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일기장에 요한 복음의 한 구절을 써 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 날 일어난 사건들이 요한 복음서가 저자가 제게 말하려는 바를 반영하고 있느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났습니다. 두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었고, 그 이야기들은 일기장에 실제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두 개의 ''실재''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중 어디에 속해 살았는가?" 분명히 둘 다였습니다.

 

{...} 

 

그것은  마치 두 개의 실재를 가진 영이 제게(스테픈 버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의 진리는 오직 너의 삶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네가 그 진리를 잡으려는 집착을 거둘 때 비로소 너는 그 진리를 손에 쥘 수 있다.''''

            -   놀라운 변화 : 마음으로 만나는 요한 복음 / 스테픈 버니 / 생활성서 에서

 

 

 

 

 

 

 

①   2006년 1월 6일 금요일

 

 매주 1,2째주 금요일 새벽미사에 제1독서 성서봉독하는 날입니다.

봉독한 요한 1서 말씀이 새롭고, 크게 와 닿았습니다.

마치 저에게는 아래 올린 영원성 실재를 격려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689 영원성(실재) 

        

  691 영원성(실재) II - 증언 

 

 

세례를 받아

성령의 도우심으로

즉 잠든 영혼에

스위치가 켜지듯

빛으로 인도되어

영이 새로운 영(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

 

믿음 

곧 신앙의 눈(렌즈)으로

즉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세상을 볼때

현존하시는 주님의 자비를 깨닫게 되고

하루 하루 삶의 모든 것이 

축복임을 깨닫는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신앙안의 은총이었습니다. 아멘

 

 

 

제1독서

<성령과 물과 피.>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5-13
사랑하는 여러분,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입니다.

8 성령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주셨고생명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지니고 있음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스테픈 버니
주교.
1919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옥스퍼드의 벨리올과 캠브리지의 웨스트코트 하우스 신학대학에서 수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야전병원에서 근무했고, 이어서 크레타 섬의 그리스 저항군에 가담해 전쟁을 겪었다. 1951년 영국 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여러 본당에서 사목했다. 1964~1970년에는 커벤트리 대성당의 참사회원으로 있었으며, 1970년 이후 원저에 있는 성 조지 대학으로 옮겨 사제와 평신도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현재는 은퇴하여 옥스퍼드셔주에 살면서 작가로, 은퇴신부들의 리더로 활동하며, 현대 신학 주제를 연구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찾아서''라는 단체를 지도하고 있다.

 

 

     ②  2006년 1월 영적독서에서 원형을 찾아서

           (살아있는 말씀으로 ...)

 

 

에니어그램을 배우면서 놀랜 것이 정말 신비하다는 것.

구원사가 바로 "요한복음 14장 27절" 이었다.

견진성사때 찾아온 참으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느낌에

세상에 이런 감정도 인간에게 있나 하였다.

 

그리고 몇달후 우연히 영적독서중에 

문장에  인용된 성경구절(요한복음 14장 27절)을 발견하고

맞다 맞어 일상적 경험해왔던 평안, 근심 걱정없는 상태나

즐거운  감정을 뛰어 넘는 무한한 평화라고 할까요...

 

무어라 표현할 언어가 없는 것 같았는데 성경에 나오는 

내가 주는 평화(살롬)... 평화(살롬)이 바로 그때 느껴던,

찾아왔던 의미라고 온 마음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샬롬)을 남기고 간다...  ...

이 구절을 읽어내려가는데 온영혼이 춤추는 듯하여

몇십번을 구송, 암송하며 소리 내며 좋아했던지,

마치 노래를 배우듯이 읖조렸다고나 할까요

...

 

새벽미사을 참례하고 돌아오는 시간

매일 아침 7시 F.M. 평화 방송에서

염수정 주교님의 말씀을 들으면

에니어그램을 배우러 갈때가 생각 나기도합니다.

 

에니어그램을 배우러 갈때

가르멜 수도회 나눔방에서

가톨릭 교회내에서 안내하여 주는

에니어그램 소개를 주보에서 보며

마치 뭔가  끌린듯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주보를 보고 창밖을 보다가 그냥...

 

그 하늘이

주교님이 말씀하시던

그냥 텅빈 공간이 아닌

분명 거기에는 무한한 성령이 함께 하신듯 느껴졌습니다.

부드러운 이끄심에 실려 갔다는 느낌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으로 오신 평화(살롬)을 "요한복음 14장 27절"을

체험한 2년뒤 에니어그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염주교님 멘트

"안녕하십니까?

염수정 주교입니다. 어느 판화가 한분은

가끔 텅빈 하늘에 대고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평화로워 진다고 고백 합니다.

 

허지만 누구든 마음에  이야기를 다 털어내서

평화를 얻는 것은 아니지요?

 

거기에는 무한한 성령이 함께 하시기에

진실로 기도하는 사람 모두에게

평화가 내려 지는 것입니다.

 

평화신문, 평화방송은

하늘의 영광, 땅에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사랑을 보태 주십시요

 

 

그런데 4년뒤 2006년1월에 영적 독서 : 두려워말라 에서

뜻하지 않게 인용하신 성경구절 발견하니

참으로 신비중에 신비랍니다.

 

어쩜 ?유형(저 개인 원형)에 ''딱'', ''꽉''관통하는 성경 말씀이

견진성사때에 위로 부터 내려오신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저에게도 신앙 체험으로 다가왔다니....

 

 오 축복이여

가톨릭의 신비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노래하나니다. 아멘

 

 

영적 독서 : 두려워말라


두려워말라
두려워말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 가다 거센 풍랑을 만났다.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살려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하고 부르짖었다
. 예수님은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시며 일어나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어 풍랑을 멈추신다.

예수님은 그 풍랑 속에서 왜 주무시고 계셨을까? 단순히 예수님은 두려움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일까? 아마도 우리의 두려움이 얼마나 덧없고 헛된 것인가를 깨닫도록 하시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삶이 위험과 불확실함으로 가득차 있다고 느끼는 ?번 유형들에게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 부분일 것이다.

에니어그램에서 다른 유형들은 두려움과 불안을 억제하거나 회피하는 반면, ?번 유형은 끊임없이 자신의 두려움을 인식한다.

이들은 자신의 두려움에서 힘을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 두려움 때문에 혼란스럽고 기운을 빼앗기며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들의 불안은 내면적이기 때문이다.

?번 유형의 근본적인 죄는 ''''두려움''''이다. 이들의 두려움은 자신의 안전과 미래의 문제뿐만 아니라 만성적인 자기 의심과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아주 친절하고 사교적이며 사람 중심적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을 숨기고 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쪽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가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배를 손질하고 노를 저어도 풍랑이 닥치면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곁엔 늘 주님이 계시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의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안미경, [성격이야기] 중에서 -

출처: 성바오로딸 영적독서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1,1)  이 구절로 요한은 예

수의 출처를 신성의 깊이에까지 추적하고 있다.

기서 “맨 처음”은 세상 창조 때를 연상케 한다

(Beutler,34참조)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면, 이는 피조물 전체가

하느님의 말씀에 삼투 되어 있어 말씀에 예민해져

있다는 것을 뜻하고, 아울러 우리도 말씀을 이해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피조물 자체는 이미 하느님의 영광을 계시하고 있다.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미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표현하고 계시며, 당신의 영광을 보이신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첫 말씀이다. 이 피조물 안에서

로고스가 이미 계시되고 있으며, 이 로고스는 예수

안에서 사람이 되셨다우리는 피조물을 함께 바라

보지 않고서는 예수를 바라볼 수 없다.

 

 

 

예수, 생명의 문/ 요한복음묵상 /안셀름 그륀/분도 p.40

 

 

 

 

 

 

참조:

 

 

569

영혼의 스위치가 켜지던 날 : 체험의 단상을  처음 신앙체험란에 올렸던 글. (2002년 어느 여름날 감실 앞에서 영원한 생명의 빛을 체험하고 2년뒤 올렸던 글)

 

 

 
691

 영원성(실재) II - 증언   

 : 그후 가톨릭 교육원에서  기초 신학을 배울 때  살아있는 말씀으로 미사성제안에서 크게 다가와, 재정리해서 본당 홈피에 올렸던 글

( 개인 신앙체험을 굿뉴스에 2004년 8월경에 올렸던 내용)

[...]
만일스스로 관대하게 지금 순간을 충만히 살고 있다면, 현재 이 순간을 통해 ''''''''영원''''''''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질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지금''''은 그리스어로 ''''아르티''''인데, 이야기가 진행되며
서 다시 이 단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루시는 것은 변화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것을어떻게 이루실까? 그분은 표징을 보여 주셨다.
그분의 때가 오면그 표징이 가리키는 실재가 드러날 것이다.
지금 요한은 ''''예수께서 갈릴래아 가나에서 이 표징을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 내셨고, 제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영광''이라는 그리스어는 원래 사물의 무게, 곧 그 가치를 가
키는 말이다. 가게 주인은 과일이나 못의 무게에 따라 값을 정해 판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영광은 그분이 지닌 가치, 즉 분이 실제로 누구신가를 말하는 것이다.
영광이라는 말마디는 또빛남을 뜻하기도 한다.
즉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빛나는 가치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 변화의 표징을 행하셨을 때, 그분이 진정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바로 그 셋째 날 제자들은 다만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새로운 질서로부터 오는 변화시키는 진리가 빛나고 있음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빛 안에서 보고 그분께 개인적인 신뢰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신랑과 신부는 그날 밤에 사랑을 나누면서 기쁨으로 가득찬 영광을 경험했을 것이고, 잔치 맡은 이는 그날 일을 곰곰히
생각하며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최고의 혼인잔치였어!"
 
영광은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드러난다.
그렇지만 그들 조차도 완전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 놀라운 변화 p.33
 
요한복음
3,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직면한, 자명하고 거역할
수 없는 진리에 의해 얻게 되는 것이며, 우리가 이제야
보게 된 그 실재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
[...]
''영원''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아이오니오스''는 글자
그대로 옮기면 ''''새로운 시대''''라는 뜻이다. 영원한 생
명은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질서에 속하는 일종의 새로운 생명을 뜻한다.
즉 생명의 무한한 기간이 아니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생명의 본질을 뜻한다. - 놀라운 변화 p.52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코린토 1서  6,17-20)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 상권 3,10) (2006-1-15 日)

 

  (2006-1-13 2째주 금요일 성서봉독 영성체송)

영성체송 

시편 9,2-3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여, 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의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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