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탄이 결박되어 갇히는 천년왕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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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종환 | 작성일2006-12-08 | 조회수91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사탄이 결박되어 갇히는 천년왕국
가톨릭 대사전에서 ‘재림’ ‘천년왕국설’ ‘공심판’ 등을 찾아보고 상해천주교요리 상권 ‘믿을 교리편’ 109번 문답 공심판은 무엇이뇨? 답 공심판은 육신이 부활하면 곧 예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천사들과 모든 사람 앞에서 각 사람의 사심판(私審判)의 판결을 공포하시는 것이니라. 의 해설을 연구해 보았는데 상해천주교요리를 읽어 오면서 다른 부분에서는 의심을 느껴본적이 별로 없었는데 유독 109번, 공심판 해설 ‘천년왕국’ 부분에서는 생각할 수록 의혹만 더 늘어 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상해천주교요리 ‘믿을 교리편’ 109번 문답 해설 344 페이지 14째줄에 보면 「천년왕국설은 아직 열교로 단죄되지는 않았지만」하고 기록된 점이였고 또 가톨릭 대사전 ‘천년왕국설’에 보면「유스티노, 이레네오 등의 교부들에 의해 지지를 받기도 했던 이 설은 교회에 의해서 배척되었다」란 내용이 믿음에 결정적 판단이 서지는 않았는데 마태 24장 3-44절「재난의 시작」「가장 큰 재난」「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날과 그 시간」편들 과는 다르게 마태 25장 31-46절「최후의 심판」편은 내용의 성격이 서로 다름을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천년왕국설을 과거에 여러교파들이 일관성 없게 부분적으로 주장했던 그런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는 쪽으로 설명해가고 있는 것인데 마태 24장 3-44절「재난의 시작」「가장 큰 재난」「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날과 그 시간」편은 마태 25장 31-46절「최후의 심판」편과는 상당한 기간이 예측이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것은「재난의 시작」「가장 큰 재난」「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날과 그 시간」편은「최후의 심판」편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말이지만 즉 예수께서는 당신이 천년왕국때 재림하실 것과 세상종말때 재림하실 것을 함축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면서 또한 잘 살펴보면 구분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때의 재림이 종말때의 재림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것이며 종말때의 재림이 천년왕국때의 재림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요한 14장 24-26절 “내가 너희에게 들려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거니와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 하셨는데 물론 이 말씀은 성자의 시대인 그 시대에도 이루어진 말씀이지만 성령의 시대인 이 재림시대에도 이루어질 말씀으로써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 주실뿐만 아니라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때인 것인데 마태 24장 25-28절의 내용을 보면 “이것은 내가 미리 말해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광야에 나타났다’ 해도 나가지 말고 ‘그리스도가 골방에 있다’ 해도 믿지 말아라.” 하셨는데 이 뜻은 마태 26장 29절 “잘 들어 두어라.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 하신 말씀의 미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뜻으로써 즉 묵시 1장 7절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처럼 하늘에 나타나는 순간적인 기적적인 재림이나 예수님 시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오시는 우리안에 또는 어떤 사람안에 협조자 성령으로 재림하시는 재림을 뜻하는 것이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고 과거처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그런 재림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 24장 29절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30절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31절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을 것이다.” 하셨는데 이 말씀은 묵시 1장 7절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 가슴을 칠 것입니다. /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과 즈가리야 12장 9-10절 ‘그 날이 오면, 내가 몸소 나서서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뭇 민족을 멸하리라. 내가 다윗 가문과 예루살렘 성민들에게 용서를 빌 마음을 품게 하리니 그들은 내 가슴을 찔러 아프게 한 일을 외아들이나 맏아들이라도 잃은 듯이 슬퍼하며 곡하리라. 그 날이 오면, 므기또 골짜기 하닷림몬에서 처럼 예루살렘에 곡성이 터질 것이다.’ 하신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즉 즈가리야 12장에서 14장까지를 보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하고 예수님께서 오실 날을 14번씩이나 말했듯이 요한 14장 20절 ‘성령의 약속’ 편에서도 예수님께서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요한 16장 23절 ‘성령께서 하시는 일’ 편에서도 “그 날이 오면 너희가 나에게 물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또 마태 25장 10-13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겨졌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고 “그 날이 오면” “그 날과 그 시간”이라는 말씀을 다시 여러번 말씀하셨듯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이 와서 그 일이 일어날 때 믿게 하시려는 말씀인 것인데 마태 24장 29절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30절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셨는데 즉 이것이 바로 재림이고 묵시 1장 7절과 즈가리야 12장 9-10절이 예수님시대와 흡사하게 다시 실현되는 때인 것입니다. 마태 24장 31절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울려퍼지는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을 것이다.” 하셨으니 재림의 표징 후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으며 마태 24장 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하신 이 말씀은 종말때도 그렇겠지만 종말때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종말 이전의 재림 때를 말하고 있기도 한 것인데 마태 24장 37-39절 “노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바로 그럴 것이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 가던 날까지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홍수를 만나 모두 휩쓸려 갔다. 그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홍수를 만났는데,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하시면서 상기를 고조시키시며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홍수가 난다는 말씀이 아니라 마태 24장 40-41절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또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다.” 는 말씀이신 것인데 그리고 이 말씀은 마태 25장 10절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겨졌다.” 는 말씀과 일치하는 말씀으로써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깨어있는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데려가고 즉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기적이 끝나는 그 날과 그 시간이 지나서는 문이 잠겨지는 이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재림은 종말은 아니며 주님이 오시고 즉시 종말이라면 데려가고 세상에 그대로 버려 두고 하는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고 또 마태 24장 15-18절을 보면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대로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독자는 알아 들으라.) 그 때에는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지붕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세간을 꺼내러 내려오지 말며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 가지 말아라.” 하셨듯이 지금은 시대적으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다니엘 12장 11절 ‘정기제사가 폐지되고 파괴자의 우상이 선 다음’ 하였듯이 마카베오상 1장 45절 ‘안식일과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47절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54절 ‘안티오쿠스왕은 번제 제단 위에 가증스러운 파멸의 우상을 세웠다.’ 하였듯이 이런 일을 비유로 이 시대에 맞게 영신적으로 알아 들어야 할 것인데 세간에 대한 과도한 애착, 겉옷에 대한 과도한 애착, 돈, 명예, 권력, 쾌락, 낙태 등 정신적으로 거룩한 곳에 우상이 서면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가 버리고(에제키엘 8장 3-6절, 또 10장, 11장, 43장, 44장) 그러면 재앙이 내리는 것인데 그래서 우상은 흉측한 황폐의 상징인 것인데 마태 24장 15-20절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독자는 알아 들으라.) 그 때에는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이런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겨울이나 안식일에 피난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여라.” 하셨듯이 즉 산으로 피난 간다는 것은 전쟁의 상황을 말하는 것인데 전쟁이 일어나면 그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산으로 피난을 갔었지만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하셨는데 모든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왜 “그 때에는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셨겠습니까? 즉 이것도 한 비유로써 마카베오상 2장 27-28절에 보면 ‘그리고 마따디아는 거리에 나서서, “율법에 대한 열성이 있고 우리 조상들이 맺은 계약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 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모든 재산을 그 도시에 버려 둔 채 자기 아들들을 데리고 산으로 피해 갔다.’ 하였듯이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하고 비유하셨겠지만 또 전쟁이 아니더라도 전쟁의 상황과 흡사한 재난을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인데 어떤 메시지 책에 보니까 “덕망의 산으로 올라가라” <<<<<<<<<<<<<<<<<<<<<<<<<<<<곱비신부님 메시지 책「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268번 ‘거룩한 산’ 편 5.) 그런즉 그분 ‘지혜’의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거라. 너희가 작고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이 지혜를 알게 되리라. 그분의 신적 지성이 너희의 지성을 끌어 당기실테니, 너희가 ‘성서’ 안에 계시된 ‘진리’의 현의를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복음’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이 시대인들에게 용감하게 전할 수 있으리라. 완전한 진리를 밝혀 주며, 그 진리로 (인류를) 인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말씀 뿐이다. 6.) 그분 ‘성심’의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거라. 불타는 나무 숲 같은 그분의 신적 사랑이 너희를 변모 시키리라. 7.) 그러면 그분의 성심을 본받아 너희 마음이 넓어져서, 너희가 바로 세상에서 고동치는 예수님의 마음이 될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분을 가장 멀리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는 마음이요, 뜨겁게 타오르는 그분의 무한한 자비로 만민을 감싸고자 하는 마음이다.>>>>>>>>>>>>>>>>>>>>>>>>>>>>>>>>>>>>> 고 하였던데 하느님께서 내리신 재난은 인간이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고, 우상을 멀리하고, 재물을 섬기기 보다는 하느님을 섬기고, 우리 자신의 삶을 덕망으로 바꿀때 멈추며 전쟁시처럼 재난이나 죄에서 구원 받는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런 때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기 마련이지만 묵시 15장 1절을 보면 ‘그 재난은 최후의 재난으로서 하느님의 분노의 마지막 표현’인 가뭄, 홍수, 기근, 지진, 전염병, 무게가 오십 근이나 되는 엄청난 우박 등 물론 많은 나라중에 전쟁을 겪는 나라들도 있겠지만 성서에서도 마태 24장 6절 “또 여러 번 난리가 일어나고 전쟁 소문도 듣게 될 것이다.” 하셨지만 전쟁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연 재난을 당하는 인도, 아프리카, 또 소문에 의하면 북한 같은데를 보더라도 임신한 여자와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을 누가 불행하지 않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실지 가장 큰 재난이 닥쳐오면 이런 재난의 기간에 마태 24장 22절 “하느님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뽑힌 사람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실 것이다.” 고 하신 점을 보더라도 이때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때가 종말이라면 뽑힌 사람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시고 말고 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전 15장 23절 ‘우리의 부활’ 편에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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