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겨울(?,) 아마 이것은 맞을 것이다. 일당을 받으며 일하던 남편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나는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쉬는 동안 운전을 배우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러겠다고 하고 운전을 배우러 다녔다. 그러는 중에 붕어빵 장사도 해 보고, 차를 사서 원예조합에서 야채를 사다 장사도 해 보았다. 나도 함께 그 일들을 했는데, 몸은 힘들었어도 마음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었다. 그 동안 한 일들은 가정 경제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모았던 천 삼백만원인가 하는 돈을 조금씩 까먹으면서 지냈다. 셋째를 낳을 때가 되어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왔다. 시어머니께서는 일을 다니셔서 아이들을 살펴 주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는 계속 기도회에 다니셨다. 그러면서 은사세미나도 받으시고, 그 때에 아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은사를 청하셨다고 한다. 그래선지 지금도 한약을 공부하셔서 외손주들이 아플 때는 약을 지어 주신다. 덕분에 아이들은 병원에 잘 가지 않고 건강하다. 아이를 낳자 남편이 올라왔다.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자는 남편과 생각이 같아 친정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갑자기 IMF가 터진 것이고, 시골의 아파트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전세계약금을 찾을 수도 없었다.남편은 매일 벼룩시장을 훑어보고, 친정 어머니도 불편하셨고, 그렇게 몇 개월 지내다가 반지하 전세를 얻어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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