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슴아픈 신앙체험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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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문환 | 작성일2007-12-05 | 조회수3,578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가슴아픈 신앙체험 이야기]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땃방님들 안녕하세요?
부족한 이 사람을
따뜻한 사랑으로 항상 이끌어 주심에
사랑이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저는 땃방에 2007년 11월 13일 가입하여 그동안 님들의 사랑을 받아오며
2008년 3월 현재 350편 이상의 글을 올리면서 저의 신앙체험을 비롯하여
신앙고백등 여러가지 저의 모든 것을 알려드고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응어리가 남아있는듯,
마음 아픈 신앙체험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이것 만은 마음이 너무 아파 하지 않을려고 하였는데,
우리 땃방님들 이제, 너무 사랑하니까요,
저의 마음도 한결 편안하여 저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2002년 6월 26일
충남 서산 현대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날 따라 저는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차를 갖고 서산에 와서
맛있는 회도먹고 안면도 꽃 바람도 구경가고 하는 이야기를 하여
아내는 그날 제가 있는 서산 현장으로 내려와서 회도먹고 구경도 하고
여러가지 아름다운 사랑도 나누고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저는 늘~ 서산 현장에 있으면서 서울 집에 올 때면 항상 아내가 서산에 와서
함께 그 차를 타고 집에 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점심을 함께 잘 먹고, 잘 놀고 서울 집에 가기전에
저의 일터인 서산 농장을 드라이브 하는겸, 한바퀴를 잘 돌다가 그만,
차가 길에 미끄러저 바다를 막아 놓은 바다 같이 큰 담수호로 차가 점복되면서
낭떠러지기에서 차가 몇 바퀴 굴러 담수호로 빠졌습니다.
그 때는 정말 너무 갑작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부인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보! 괜찬아?
정신차려! 하면서..
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아내를 마구 흔들면서
여보! 우리는 여기서 꼭 살아 나가야 해요..
집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아들 하늘이가 있잖아 하면서..
아내를 더욱 강하게 흔들며 살아나가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 날 따라 아내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살아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과하고
꼼작도 하지 않고 자기는 저~ 세상으로만 가야한다는 말만 계속 하였습니다.
도저희 저로서는 납득이 안가고 어떻게 이해도 안되고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죽음의 현실속에서 시간을 다투며 숨막히는 사투를 하는 동안,
차안에는 바다 물이 스며들어 차안을 온통 물로 차있어 이제는 함께
죽는 길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떻게든 아내와 함께 살아나가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차의 문을 열려고 하였으나,
차의 문은 꼼짝도 않고 아무리 열려고 몸 부림을 첯으나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물은 차안을 가득 채워 목 까지 차올라 이제는 정말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직 아내와 살아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아내를 계속 흔들고
애원을 하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고 죽음의 앞에서 사투를 하는 순간,
차안에는 물이 꽉 차 완전히 저와 아내도 물속에 잠겨 더이상 말조차 할 수 없는
죽음의 현실로 왔습니다.
저 또한 물속에 완전히 잠겨 마지막 제 몸에 남아 있는 공기로 1초 라도 견디면서
사랑이신 하느님께 마지막 저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저의 부부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하느님께서 결혼 7년만에 주신 우리 아들 하늘이는
어쩌라는 말입니까? 하면서...
속으로 몇 초 남지 않은 죽음의 문턱에서 간절히...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렇게도 열리지 않았던 차의 문이 열리면서
저의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
차안에서 튕겨저 나와 저의 코가 물 밖으로 나와 죽기 바로 직전에
그동안 죽을각오로 참았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것이 무었인지, 저것이 무었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직 차안에는 아내가 남아있었습니다.
정말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소리만 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요.. 사람 살려.. 사람살려..
정말 저는 태어나서 그렇게 애원하며 살려달라고 소리쳐본 적은
그 때였습니다..
저는 또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쓰고는 있지만,
그 때 죽음의 현실속에서 그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밖에는.....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살려달라고 소리 소리를 쳤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 그곳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크고 외진대라서
사람도 없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알 수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가며 사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저 마저도 힘이 다 빠져 기진 맥진 물 속으로 자꾸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 이제 나도 함께 죽는구나 하고 포기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에 혼자 남아 있는 고등학교 2학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하늘이는 그럼, 어떻게 되는거야... 하면서...
아니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힘을 내어 살아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 오르면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아내를 뒤로한 채 억울한 눈물을... 원통한 눈물을...
어찌할 수 없는 쓰라린 눈물을...한 없이... 한 없이... 흘리며...
저 역시 반은 죽어 간신이 물 밖으로 나와 그 바다를 바라보며
여보! 여보! 여보! 도대채 이게 무슨일입니까?..
도대채 당신은 왜? 왜? 왜? 그랜겁니까?... 왜? 왜? 말좀 해봐요..말좀...하면서...
엉엉울면서 간신히 언덕으로 올라가 사람살려...사람살려... 하면서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그 때 현대건설 직원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몇 명이 뛰어 왔으나 구조 장비가 없는 맨몸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자꾸만~ 자꾸만~ 가는데...
정말 저의 가슴은 온통 갈기 갈기 다 찢어지고
온통 억울하고, 억울하고, 분하고 어찌 나에게 이런일이
그 속타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 때 서산 119에서 사고 후 약 30~40분 후에 와서 구조를 하였으나...
사랑하는 아내는 이미 싸늘한......
정말 저는 지금도 이해안되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지금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답니다..
그러고 저는 아내를 서산병원으로 가서
거기서 집에도 오지 못하고 거기서 가슴아픈 장례를 치르고
아내를 화장을 하여, 억울하고 , 분하고 정말 부인을 장지로 보내지 못하고,
집으로 함께와서
아내에게 다 하지 못한 사랑을 1년 6개월을
저의 방에 꽃 가마를
아름답게 만들어 함께 보내고 함께 먹고 자고 함께 이야기 하고 하면서
부인이 세상을 떠난지 2년차에 경기도 강화에 있는 좋은 곳에 보냈답니다...
그 후 부터 제가 신앙체험 방에 기 올려 놓은 여러가지
성령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등등 하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아내를 강화에 보내고 그동안 많은 것들을 깨달아
지금 제가 다니는
공덕 성당에 냉담한지 17년 만에 다시 나가게된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오직한분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왔고,
신앙 생활에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였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저의 이런 가슴아픈 이야기를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는 정말 죽을 때까지 가져가려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모두 털어 놓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이 사람을 앞으로도 따뜻한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면서 여기서 줄입니다.
--아멘--
**그 때 저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성공한 상태였으며,
가족과도 가장 행복하였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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